테미오래(옛 충남도지사 공관)
다시 찾은 한여름의 대전은 여전히 뜨거웠다. 쨍쨍한 햇볕 아래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은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크락션 소리가 쉼 없이 이어진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한 뼘의 손으로 햇살을 가리고 저마다의 부채질과 커피 한 모금으로 이 반짝이는 여름과 조용한 사투를 벌인다. 숨이 막힌 듯한 열기 속에서 어디든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도심을 지나 한참을 걷다 보니 대흥동 골목에 접어드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초록빛으로 무성한 나뭇잎 아래 그늘이 번지고 잠깐식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를 식혀준다.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니, 조금 전까지 귀를 채우던 소음도, 사람들의 분주한 기척도 이곳에는 없다. 오래된 담장과 붉은 벽돌 집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낯설지만 이상하리만큼 편안한 풍경과 함께 담장 너머 큰 집이 보이니 바로 테미오래였다.
대흥동 언덕길 끝자락에 다다르면 보이는 높은 담장 뒤로 오래된 붉은 벽돌과 회벽 건물들이 켜켜이 시간을 품고 자리한다. 누구나 지나칠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던 이곳은 과거 권력의 일상이 머물렀던 공간이자 권위의 상징이었던 옛 충남도지사 공관이다. 대흥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충남도청이 이전하면서 대전의 근대 상업・행정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철도와 도청을 중심으로 관공서, 금융기관, 상업시설이 모여들며 충청권을 대표하는 도시 공간이 형성되었다.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 충청권 정치・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이어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둔산・서구 일대에 신도심이 개발되며 대흥동은 중심 기능을 점차 잃었고, 구도심으로서 쇠퇴해 갔다. 번화했던 거리에는 빈 점포들이 늘어났고 노후한 주거지와 함께 과거의 중심지는 조용히 시간 속으로 물러났다.
그런 대흥동 한복판, 권력의 생활공간이었던 대흥동 관사촌은 오랜 세월 담장 속에 갇혀 있었다.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도지사와 국장급 관료들을 위한 관사촌이 조성되었고, 식민지 통치를 위한 일본의 지방 행정 전략이 공간 구조로 구현되었다. 일본 본토의 관청-관사 일체형 구조를 모방한 이 관사촌은 공적 업무와 사적 생활이 물리적・공간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식민지 권력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관사촌 형태는 전국 각지에 존재했지만 대부분 시간이 흐르며 철거되거나 용도를 잃었다. 대전처럼 도지사 공관과 관사들이 군락 형태로 보존된 사례는 거의 유일하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며 잠시 국가 권력의 무대로 변모하기도 했던 이곳은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채 오랜 세월 닫혀 있었다.
담장을 넘어 공관 일대에 들어서면 시대적 혼종성이 공간 곳곳에서 드러난다. 일본식 주택 구조를 바탕으로 서양의 아르데코 양식이 덧입혀진 외관, 그리고 한편에 자리한 온돌의 형태도 보인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건축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전통 주거 양식을 유지했고, 조선에서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온돌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건축은 일본식, 서양식, 한국식이 뒤섞인 독특한 건축적 풍경을 만들어냈다.
일본식 경사 지붕 아래 붉은 벽돌과 회벽이 어우러진 입면은 당시 일본 본토의 근대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며 내부 응접실에는 대리석 벽난로와 당시 사용한 타일 재료가 아직 자리한다. 둥근 원형창과 남쪽으로 문을 열면 정원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테라스가 연결되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응접실 바닥 마감은 나무토막을 짜 맞춘 일본 목공예 기법인 요세기로 장식되어 있다.
1920~30년대 세계적으로 유행한 아르데코 양식은 일본과 조선에도 마찬가지였다. 직선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 세련된 장식성을 통해 근대화의 상징이자 권위의 공간을 꾸미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계단 왼쪽 창문을 바라보면 채색된 형태의 스태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다. 1930년대 주로 종교 건물에서 사용한 양식이 비종교 건물인 일반 주택에 도입된 요소는 공관이 근대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예시이며 원형창과 직선 배열의 창틀은 채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아르데코풍의 건축 요소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건축 요소는 서울역 본관, 서울시의회 본관 건물 등 근대건축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일본식 가옥 구조다. 2층의 다다미가 깔린 방과 1층 내실과 정원 사이의 복도, 외부와 내부 동선을 분리하는 속복도(裏廊下, 우라로카)는 일본 상류층 주택의 전형을 따른다. 계단을 올라 2층에 다다르면 일본 전통 양식의 접객 공간이 나타난다. 객실과 협실 두 개의 공간을 연속적으로 배치한 공간은 단을 높게 만든 장식과 선반 그리고 협실의 벽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과거 이곳 객실에 열 장, 협실에는 여섯 장의 다다미가 바닥에 깔려 있었지만 지금은 복원된 다다미로 교체되어 원형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한 형태다.
1층 내실과 정원 사이를 가로지르는 복도는 남향으로 형성된 정원을 마주하고 있으며 주택의 베란다 역할을 한다. 복도 끝을 지나면 일본 전통 주거공간인 *차노마(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방, 거실)와 주방으로 이어진다. 베란다를 나와 정원으로 나오면 돌과 소나무, 자갈로 구성된 일본식 마당 정원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이는 교토의 무로마치 시대부터 발전한 전통 일본식 정원의 계보를 따르는 형태다. 이곳에 머무르던 이승만 대통령은 베란다에서 바라본 이 정원의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당시 여중은 부엌일과 허드렛일을 맡아서 일하는 사람, 서생은 외부 손님 접대, 청소와 같은 일을 맡아서 하는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여중실은 가족들이 드나드는 내현관과 주방 가까이 있고 서생실은 손님이 드나드는 외현관과 응접실 가까이 있어 손님을 응접 하는데 용이했다. 그리고 두 방 사이를 거치는 속복도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용인과 거주자의 동선을 철저히 구분하며 공간 자체로 위계질서를 드러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권력적 공간 구성 안에 조선의 온돌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문화 수용이 아닌 조선의 기후와 식민지 권력자의 생활 조건 간의 절충을 보여주는 요소다. 온돌과 다다미, 서양식 응접실이 하나의 주거 공간 안에 공존하는 구조는 그 시대 권력의 생활양식과 지역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다.
공관을 나와 언덕길을 내려가며 인접한 관사들도 둘러본다. 담장을 경계로 한 각 관사들은 건물마다 위계와 기능이 구분된다. 약 1만 355㎡나 되는 면적 위로 1930년대 건물 6동이 지어지고, 1970년대 4개 동이 지어져 총 10개 동으로 이루어진 관사촌은 도지사 관사 1동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4동, 서쪽으로 2동이 지어지고 서쪽에 4동의 관사가 추가로 건립된다.
그중 도지사 공관은 골목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권위의 상징성을 강조한다. 1, 2 관사는 정원과 응접실을 갖춘 당시 고위 관료들의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5,6 관사는 비교적 단순한 평면 구조에 생활 편의성을 중시했다. 나머지 관사들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지며 숙직 공간이나 보조 역할을 담당했다. 어느 하나도 개인의 안락한 주거라기보다 공적 지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공간이었다.
한때 권력의 질서를 보여주던 이 군락은 이제 '테미오래'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시민공모로 만들어진 이 이름은 ‘이 지역의 작은 산성 '테미'와 순우리말 '오래’를 합성한 이름으로 '테미와 관사촌의 오랜 역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테미로 오래'라는 중의적 표현도 있다. 그렇게 개발과 철거 논의가 반복되던 테미오래는 담장 너머로 바람이 스며들고, 사람들이 골목에서, 정원에서 담소를 나누고 산책을 즐긴다.
테미오래는 단순한 과거 보존이 아닌 구도심의 쇠퇴한 공간을 기억의 장소로 재구성한다. 최근 대흥동 일대에는 북카페, 소규모 전시공간, 공방들이 들어서며 예술과 커뮤니티 중심의 공간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테미오래 또한 그 흐름 속에서 구도심의 기억과 현재의 일상을 잇는 매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권력의 생활공간이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전환되며 도시는 시간과 공공성을 새롭게 연결한다. 이는 공간을 단절된 유산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다시 살아 숨 쉬게 하는 일이다. 현재 테미오래는 전시관, 북카페, 시민 모임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건물 개보수와 프로그램 준비로 임시 휴무에 들어갔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테미오래는 보존과 활용 사이의 균형을 보여주는 사례다. 구도심의 낡은 공간을 단순히 철거하거나 관광지 하기보다 시민들의 일상 공간으로 전환시켜 개발과 쇠퇴의 이면에서 도시의 정체성과 공공성을 회복하려는 작은 움직임이다. 닫혀 있던 권력의 담장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이제 시간이 남긴 기억과 오늘의 일상이 겹쳐진다. 그렇게 테미오래는 과거의 흔적 위로 새로운 삶의 장면들이 쌓여가는 오래된 도시의 현재 진행형 풍경이 된다.
글, 사진 | citevo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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