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동 선교사촌
비가 그친 한남대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캠퍼스 경계 끝자락에서 울창한 숲을 마주했다. 그 광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길을 따라 늘어선 버즘나무들이 묵직한 줄기를 드러내고 그 사이로 붉은 벽돌집 몇 채가 조용히 숲을 바라보고 있다. 그 집들은 사람보다 시간이 더 많이 머물고 간 듯하고 무성한 여름잎 아래로는 아직 선선한 공기가 감돈다.
한때 과수원이 자리하던 이곳은 1950년대 중반 한남대학교 설립을 추진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조성한 '오정동 선교사촌'이다. 대전에서도 도시 외곽에 해당하는 이곳은 경부선 철도 인근이라는 입지 덕분에 근대기 도시 확장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지역이었다. 그 중심에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정착해 근대적 교육기관의 설립과 의료 선교가 이루어졌고 이후 한남대학교가 그 맥락 위에 세워진다. 외래성과 지역성이 겹쳐진 이 장소는 대전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확장되고 성장해 왔는지를 압축해 보여준다.
현재 오정동 선교사촌에는 1955년에 지어진 한양절충 주택 세동(이하 '선교사 절충주택')과 1958년에 지어진 서양식 주택 세 동(각각 타요한하우스, 무어하우스, 로빈슨하우스 이하 '선교사 양옥')이 남아 있다. 숲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세 채의 선교사 절충주택 인돈하우스, 서머빌하우스, 크림하우스는 모두 ㄷ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의 안마당을 감싸는 방식으로 배치된다.
이 배치는 전통한옥의 중정을 연상케 하지만 외벽은 붉은 적벽돌로 단단히 쌓여 있고 처마 아래에는 유리문을 두른 복도가 이어진다. 건물의 선과 면은 대체로 절제되어 있고 마당 쪽은 시선을 차단하듯 살짝 틀어진 구도로 열려있다. 이는 외부에서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며, 안쪽으로는 오히려 부드러운 개방성을 품는다.
지붕을 올려다보면 전통 한식 구조인 무고주 5량 방식이 보이고 팔작지붕의 낮은 기울기가 간결한 처마선과 만나 건물을 부드럽게 감싼다. 외벽은 목골벽돌조 구조로, 내부의 목재 뼈대 위에 벽돌을 덧쌓아 마감항 형식을 취했다.
벽체구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목재 뼈대를 안쪽에 설치하고 그 외부에 0.5B 치장 쌓기를 했다. 한편, 단열재를 사용하지 않은 공간(복도나 서재, 다용도실)은 1.0B 네덜란드식 쌓기를 했는데 벽돌 크기도 일반적인 규격보다 크다. 이러한 구성은 이용시간에 따른 적용 방식을 달리 한 구조를 엿볼 수 있다. 또 하부에 1.0B 네덜란드식 쌓기를 하고 상부에 목재 뼈대 창호틀을 설치하는 형식으로 조망과 일조를 위해 넓은 창이 요구되고 단열의 필요성이 작은 공간에 적용해 공간의 용도에 따라 벽체 구조방식을 달리했다.
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주거 방식이 확연히 달라진 세 채의 집들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봤던 한옥의 절충적 요소 없이 미국식 주거 문법을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한 서양식 양옥 구조다. 숲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타요한 하우스는 담장이 없는 채로 길과 나란히 놓여 있어 평지 위에 가볍게 얹힌 느낌이다. 외형은 단정한 박공지붕과 일정한 창 배열이 수평적인 인상을 준다. 절충주택처럼 마루나 중정의 형태 없이 벽과 문으로 단단히 구획된 구조를 띤다.
이어지는 로빈슨하우스는 외관을 따라 걷게 되면 미국 어딘가를 거니는 느낌을 받는다. 타요한하우스와 유사한 구조를 이루면서도 단정한 선이 강조된 형태가 돋보이는 주택은 평지붕에 가까운 낮은 경사와 긴 수평창이 특징이며 흰색 페인트가 입혀진 콘크리트 위에 가느다란 벽돌 띠를 더해 마감이 들어갔다. 특히 입면에서 바라봤을 때 어느 방향에서도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굉장히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가장 넓은 부지에 자리한 무어하우스는 비교적 시선이 안정감 있게 머문다. 앞서 봤던 두 채보다 규모가 크고 정면보다 측면에서 바라볼 때 더 안정된 구도를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단층에 박공지붕을 얹은 구조로 단순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창 배열과 처마선이 전체에 고르게 있어 조용한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숲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며 전혀 다른 두 건축 문법이 공존하는 풍경을 경험했다. 한쪽은 전통 한옥의 구조와 미감을 서양식 생활 방식에 맞춰 조율하려 했고 다른 쪽은 익숙한 서구식 평면을 그대로 새로운 땅에 옮겨놨다. 이 둘은 어느 하나가 우월하거나 열등한 구조가 아니다. 이질적인 두 언어가 같은 시간과 땅 위에 나란히 존재하며 서로를 비추고 균형을 이루는 모습은 이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독특한 건축미학이다.
오정동 선교사촌은 그렇게 말없이 도시의 시간을 품은 채 나란히 서 있다. 걷다 보면 이곳의 벽돌 틈 사이로 그 시대의 문화와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한 자리에 녹아들었는지 상상하게 된다.
글, 사진 | citevoix
- 한남대학교주차장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