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숲속쉼터
오랜만에 인왕산을 올랐다. 인왕산 등산로는 한양도성 성벽을 따라 올라가는데 사이사이 작은 계곡의 수려한 모습과 서촌 주거지 일대를 조망할 수 있고 더 높이 올라가면 남산 일대 조망이 시원하게 밝힌다. 북악산처럼 위엄을 드러내지도, 남산처럼 중심을 차지하지도 않지만 인왕산은 도심에 닿아 있으면서도 한 발 물러서 있는 느낌이 주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성벽을 따라 조금 더 올라서면 바위와 숲이 이어지는 언덕 중턱에 쉼터라고 적힌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그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서면 묵직한 콘크리트 필로티 위로 지붕이 올려져 있는 건축이 모습을 드러낸다.
숲길 사이로 불쑥 모습을 드러낸 쉼터는 과거 인왕3분초로 군 초소이자 초병들의 거주공간으로 사용되던 공간이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북안산과 인왕산에는 약 30여 개의 군 초소가 들어서면서 오랫동안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도시의 경계에서 통제와 감시의 기억이 머물던 자리는 그 폐쇄적 시간 위에 바람과 빛 그리고 고요가 머무는 풍경을 펼치며 시민들을 위한 쉼터로 재구성됐다.
스틸그레이팅 브릿지는 땅과 완전히 닿지 않은 채, 지면 위로 살짝 들어 올려져 있다. 비 오는 날엔 물길이 자연스럽게 빠지고, 눈이 내려도 미끄러움이 덜하다. 동시에 발아래로 보이는 낭떠러지 같은 숲길은 보행자에게 묘한 긴장감을 준다.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몸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그 상태로 쉼터의 필로디 구조 아래에 도달한다. 지형을 따라 움푹 꺼지고 솟아오는 길 위에 얹힌 구조들의 전환은 단순한 동선이 아니라 도시와 자연, 폐쇄와 개방 사이를 오가는 감각적 경험의 흐름을 만든다.
목구조로 구성된 내부는 외관의 무거운 인상과 달리 가벼운 인상을 준다. 철근콘크리트 필로티 기둥 위로 목재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지붕판을 끼워 넣는 형식으로 구조물을 조립했다. 거대한 크기의 지붕판은 목재 기둥 위에 얹힌게 아닌 그 사이에 끼움으로써 하중 전달을 분산하고 기둥에 의해 비워진 틈은 간접조명으로 그 효과를 강조했다. 여기에 통창으로 들어오는 외부의 햇살은 공간을 더 가볍고 부유하게 만든다.
무거운 지붕 구조물이 떠 있는 듯한 인상은 자연광과 어우러지며 건축이 지닌 물성을 시각적으로 흐트러뜨린다. 앉아 있으면 건축 안에 머무는 것 같다가도 밖에 나와 있는 듯한 이중의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몇 개의 테이블과 의자, 서재를 제외하고 공간을 채우는 기능은 거의 없다. 그저 빛이 머무르고 사람이 조용히 쉬어갈 수 있도록 비워진 쉼터이자 소규모 도서관으로 활용될 뿐이다. 인왕산 오르막길 중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머무를 수 있는 이 장소는 시간이 조금씩 더해지며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글, 사진 | citevoix
- 운영시간
화-일 10:00-17:00(매주 월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