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도서관
카페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공부하고 만나며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 있는 광경을 이제는 당연스럽게 볼 수 있다. 한 잔의 커피와 적당한 소음은 때때로 영감을 주고 집중의 리듬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기능은 본래 도서관이 품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책이 줄 수 있는 지식의 깊이와 공공 공간이 만들어내는 열린 교류의 장. 카페와 달리 도서관은 돈을 내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더 오래, 더 깊게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다.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도시가 품은 삶의 리듬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공공 건축물이다. 최근 개관한 부산 덕천도서관은 부산 북구의 생활권 속에서 오랫동안 학습 공간의 부족을 체감해 온 주민들에게 하나의 응답처럼 나타났다. 도시의 가장 생활적인 층위에서 지식과 문화가 교차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새로운 도서관 모델이 구현됐다.
덕천도서관은 부산 북구의 주거지 밀집지 안에 자리한다. 과거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은 대부분 시청이나 구청 주변의 교통 요충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접근성은 좋았지만, 생활권 단위에서의 멀고 낯선 공간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부산 북구 역시 마찬가지였고 덕천도서관의 등장은 바로 이 격차를 메우려는 시도의 결과다. 생활 SOC 정책의 흐름 속에서, 도서관은 이제 도시의 중심이 아니라 동네의 중심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한때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덕천여중 강당동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해다는 점이다. 인구 구조 변화 속에서 기능을 잃었던 교육 시설이 다시금 지식과 배움의 거점으로 변신한 것이다. 같은 부지의 교실동은 부산시교육청의 SW・AI 교육센터로 재탄생했고, 강당은 도서관으로, 운동장은 주민들의 쉼터와 도서관을 찾는 주차장 공간으로 바뀌었다. 시간의 흔적을 품은 장소가 또 다른 세대를 위한 배움의 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덕천도서관은 '단절이 아닌 전환'의 건축적 서사를 품고 있다.
외관은 단순하다. 하지만 이 단순함은 기능적 절제와 맥락적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거 단지와 상업 공간이 혼재하는 주변 환경 속에서 건물은 하나의 '중립적 벽'처럼 세워져 도시의 혼잡을 차단하면서 내부로 시선을 유도한다. 커다란 저면 개구부는 도서관이 닫힌 성역이 아니라,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광장임을 상징한다.
실내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큰 숨'이다. 강당동이 가진 원래의 큰 층고와 넓은 단일 폭은 리모델링 이후에도 공간의 기본 리듬으로 남아 자연광이 상부에서 부드럽게 퍼지고 사람들의 체류를 길게 유도한다. 덕천도서관이 지닌 이 볼륨감은 우연이 아니라 학교 강당의 구조적 여유를 '동네 커먼즈'로 재해석한 결과다. 이는 단순한 공간 재사용을 넘어 폐교가 동네의 문화 생활권으로 전환되는 상징적 장면을 만든다.
층별 프로그램 역시 강당의 성격을 품은 채 새롭게 배치됐다. 1층은 어린이 자료실과 커뮤니티 라운지가 들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학부모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2, 3층은 종합자료실과 오픈 스터디 존으로 꾸며졌고, 4층은 소규모 세미나실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커뮤니티로 방문객들을 품는다.
이러한 층별 리듬은 최근 공공서관의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거대한 아트리움 중심의 신축형 도서관이 하나의 큰 무대를 만든다면 덕천도서관은 분산된 작은 커먼즈를 층층이 놓아 이용자들이 흩어지고 모이는 다양한 장면을 만든다. 활기에서 정숙으로 이어지는 소리의 그라데이션은 카페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머물고 이야기하는 경험을 공공의 언어로 되돌려 놓는다. 돈을 내지 않아도, 오래 머물러도, 세대가 다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동네의 제3의 공간으로서 도서관이 복원된 것이다.
도시 정책에 있어 이런 공간은 흔히 생활 SOC(사회간접자본)이라 불린다. 복잡한 용어 같지만 사실은 간단하다. 가까운 생활권 안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문화, 교육, 복지 인프라를 뜻한다. 동네 도서관, 작은 도서관, 작은 체육관, 주민센터 같은 시설이 여기에 속한다. 책을 빌리고 공부하는 기능에만 머물던 도서관이 요즘 들어 공연, 전시, 모임까지 품게 된 것도 이 맥락 속에 있다. 덕천도서관 역시 생활 SOC라는 정책적 흐름 안에서 태어난 동네의 새로운 무대다.
도서관은 결국 사람이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 그래서 건축은 형태만큼이나 재료의 감각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강당동의 골격을 이루던 노출 콘크리트는 그대로 남겨둔 채, 차갑고 단단한 재료는 구조적 안정감을 주면서도 옛 건물이 가진 시간을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곳곳의 목재 마감과 따뜻한 패브릭 흡음재가 배치되어 차가움과 따뜻함,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며 도서관은 균형을 찾는다.
강당의 무대가 있던 자리는 이제 작은 공연과 북토크, 영화 상영 등이 가능한 다목적 홀, 커뮤니티 룸으로 바뀌었다. 학생들뿐 아니라 아이와 부모, 시니어, 청년 모두가 함께 교류한다. 과거 교내 행사가 열리던 풍경의 강당이 가진 집합의 기억은 그대로 유지된 채 이제는 더 많은 세대를 위한 문화 무대로 재생된다.
책과 그림, 강연과 워크숍이 한 지붕 아래서 동시에 일어나는 경험은 도서관이 '정적 공간'이라는 오래된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카페나 멀리 떨어진 대형 문화시설을 찾아가지 않아도 아이 돌봄 프로그램, 취미 워크숍, 강연 참여 등 문화와 교육이 생활권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덕천도서관은 세대 간 교류를 의도적으로 끌어낸다. 아이들이 뛰노는 유아 자료실 옆에서 어르신들은 책을 읽고 지역 강좌에 참여한다. 청년들은 오픈 스터디 존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이면 커뮤니티 라운지에서 북 모임에 합류한다. 연령과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 한 건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장면은 도시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 혼합'의 작은 모델처럼 보인다.
덕천도서관은 부산이 지향하는 도시 전략을 가장 생활적인 장면으로 구현한다. 멀리 대형 문화시설을 가지 않아도 도보 15분 안에서 아이 돌봄, 학습, 휴식, 문화 향유가 가능하다. 이는 생활 SOC가 목표로 삼아온 그림이자 15분 도시 정책의 구체적인 풍경이다. 더 나아가 이곳은 세대와 경험이 교차하는 작은 도시 실험실이다. 아이들의 웃음과 청년의 집중, 어른의 쉼과 노년의 대화가 한 건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과거 학생들의 모임터였던 강당은 이제 지역 전체를 위한 열린 광장이 되었고 도시가 기억을 전환하는 방식을 몸소 보여준다.
글, 사진 | citevoix
- 운영시간
화-금 종합자료실 09:00-22:00 / 영유아자료실 09:00-18:00
토요일 09:00-18:00, 일요일 09:00-17:00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 내부 주차장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