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로평상
구로 항동은 서울의 마지막 개발지로, 부천과 맞닿은 도시의 경계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서울 중심부와 물리적 거리가 멀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대중교통망 역시 확충된 탓에 생활 동선에서 부리한 조건을 안고 있었다. 또한 오랫동안 주변이 공업지대와 맞닿아 있었던 까닭에 주거지로서의 매력이 낮게 평가되었고 지형과 토지 조건 역시 대규모 개발에 제약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리함 속에서도 서울의 첫 대규모 도심 수목원인 푸른 수목원의 존재는 항동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도시의 끝자락에서 갑작스럽게 열린 거대한 공공의 숲은 이곳을 '서울의 마지막 개발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도시의 실험장'으로 전환시켰다. 수목원은 더 이상 항동을 변두리로 머물게 하지 않고, 도시가 숨을 고르고 관계를 새롭게 맺을 수 있는 출발점으로 만들었다.
푸른 수목원이 들어선 이후, 항동의 풍경은 조금씩 다라졌다. 변두리라는 낯선 이미지 대신 도심 한복판에서 쉽게 보기 힘든 숲과 산책로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겼다. 도시의 끝자락이라는 불리한 조건은 여전했지만 이제 이곳은 숲을 매개로 열린 새로운 생활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건축가는 바로 이 변화에서 출발했다. 수목원이 만들어낸 새로운 흐름을 건축 속에 끌어들이고 주변과 시선을 공유하는 공간을 통해 항동의 불리함을 기회로 바꿔내고자 했다. 그렇게 9로평상은 '숲을 바라보는 건축', 더 나아가 도시적 경험을 새롭게 실험하는 건축으로 자리하게 했다.
9로평상이 던지는 가장 독창적인 실험은 건물 전체를 노상으로 만드는 시도다. 매 층마다 다른 형태와 내용이 이어지며 마치 골목을 거니는 듯한 경험이 축적된다. 경사진 스탠드를 지나고 세팅된 의자들을 통과하며, 또 다른 플로어로 나아가는 과정은 작은 도시를 압축적으로 탐험하는 행위와 닮아 있다. 건물은 크지 않지만 공간의 연속적 흐름은 도시적이다. 건축이 단일한 기능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도시적 구조를 재현하는 실험적 태도를 보여준다.
보행자에게 있어 가로 환경은 굉장히 중요하다. 잠깐의 발걸음이 그들에게 미치는 보행의 즐거움을 좌우한다. 많은 건물들이 주차 문제와 또는 건물 층수의 이익을 보기 위해 필로티를 띠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보행자에게 굉장히 불편하다. 당장 눈앞에 건물에 담벼락을 쌓거나 차들 사이를 통해 지나가야만 한다면 다들 인상부터 찌푸려지지 않는가.
9로평상은 보행 경험을 방해하는 주차장, 담벼락 대신 1층 그라운드와 다른 레벨을 만들어 보행자를 위한 여분의 길을 선사했다. 또한 건물과 도로의 접점에 작은 평상과 포켓 공간을 마련해 주민들의 자발적 머무름을 유도했다. 건물에서 크지 않는 영역이지만 이는 공공성의 작은 씨앗이다.
9로평상의 프로그램은 공장과 카페가 공존하는 구조다. 일반적으로 이질적 기능은 충돌하기 마련이지만, 9로평상은 이를 시작적 투명성으로 풀어낸다. '글라스 인 글라스' 개념을 통해 물리적으로는 분리하지만 시선은 투과시켜 공장의 움직임과 소비 행위가 교차한다.
음료를 마시며 바라보는 생산의 풍경은 소비의 신뢰를 강화하고, 동시에 일상적 경험을 확장한다. 특히 3층에서는 콘크리트를 현수 구조로 띄워내어 긴 수평창을 통해 공장을 부각하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이는 단순한 구조적 모험을 넘어서 생산과 소비, 노동과 휴식의 장면을 하나의 도시적 경험 속에 통합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9로평상의 중심에는 전통적 장치인 평상이 있다. 아이들의 놀이, 어른들의 대화, 공동체의 일상을 담아내던 평상은 이곳에서 현대적 다중 공간으로 전환된다. 5명에서 20명까지도 수용 가능한 가변적 구조는 단순한 가구를 넘어 사회적 관계를 촉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한 사람이 먼저 앉아 있어도 다른 이들이 오면 자리를 내어주고 함께 어울리게 되는 풍경은 공동체적 속성을 다시 확인시킨다. 공간은 사람을 모으고, 사람은 다시 공간을 재구성한다.
건물의 클라이맥스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옥상이다. 흔히 옥상은 그대로 비워두는 경우가 많지만 9로평상에서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무대다. 경사 동선을 따라 도달한 루프탑에서는 수목원과 주변 경계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옥상을 단순한 잉여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땅을 두 배로 확장하는 장치로 건축가는 해석했다.
구로 항동의 끝자락에 선 건축은 불리한 땅의 조건 속에서도 숲과 공존하는 길을 택했다. 대지 북측의 푸른 수목원을 향해 열린 시선은 건물을 단순한 카페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도시가 서로 매개하는 장치로 만들었다. 이 작은 건축이 서울건축상으로 주목받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생각해 보면 중심부의 화려한 개발이 아니었기에 이 작은 건축이 더 선명한 공공성을 품게 된 것이 아닐까. 거대한 상징 건축이 아니었기에 평상과 옥상의 장치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게 된 것은 아닐까. 결국 9로평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다. 도시의 공공성은 화려한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의 작은 평상 위에서 조용히 시작되는 것이라고-
글, 사진 | citevo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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