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르미술관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던 여름날의 휴일에 경주를 찾았다. 올 초 겨울에 방문하고 딱 6개월이 지난 때였다. 겨울의 경주는 온통 갈색이었다. 지금은 초록빛이 도시를 감싸 햇살조차 시원하게 느껴졌다. 자주 들리던 카페에서 커피로 더위를 달래고 대릉원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낮은 능선 사이로 유리빛이 번쩍이는 건물이 나타났다. 주변의 고분군의 곡선과는 다른 경사진 선을 가진 건축. 오아르 미술관이었다. 올봄 개관 소식을 접하고 한 번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발걸음을 옮기게 될 줄은 몰랐다.
가까이 다가가 건물을 보니 외관은 세련된 인상을 풍기는데 유리 입면은 주변 대릉원을 반사해 스스로를 감추면서도 멀리 서는 능선이 이어진 듯 보이고 가까이서는 금속 패널 마감이 선명히 드러난다.
오아르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고분 바로 앞에 있다는 점이다.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고분 뷰'를 경험한다. 건축은 이를 위해 세 가지 장면을 설정한다. 첫째, 외부 입면의 유리에 비친 대릉원의 풍경 둘째, 내부 유리창이 병풍처럼 펼쳐 보여주는 풍경 셋째, 카페 공간 벽면 거울을 통해 다시 반사된 풍경이다.
입구를 지나면 카페와 굿즈숍이 자리한다. 이곳의 유리 패널은 창이라기보다 액자에 가깝다. 능선을 담은 풍경은 하나의 작품처럼 놓여 있다. 맞은편 카페 공간은 미러서스로 마감된 벽면과 바리솔 조명으로 마감된 천정을 통해 외부의 실제 풍경을 분절, 확장하며 실내를 자연광처럼 밝힌다. 덕분에 방문객은 주문을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도 경주의 장면이 겹겹이 중첩된 경험을 하게 된다.
1층은 굿즈숍과 카페 그리고 상설전시실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상설전시실을 가려면 카페와 굿즈숍을 지나야 하는 동선이다. 자칫하면 카페 이용객과 동선이 겹쳐 다소 번잡해 보일 수 있지만 대릉원을 배경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작품을 보는 경험은 오직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기에 정형적인 동선을 일부러 따르지 않은 걸까.
2층으로 올라가면 높은 유리창을 통해 1층보다 넓게 펼쳐진 대릉원의 풍경이 들어온다. 천장의 형태는 박공지붕이 꺾이고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며 높낮이가 다양해져 보는 이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조율한다. 큰 작품 앞에서는 공간이 열리고, 작은 작품 옆에서는 집중도가 높아진다. 1층이 수평된 높낮이가 이어지는 정형적인 공간이었다면 2층은 경사로의 시선을 따라가는 다이나믹한 공간감을 선사한다.
전시실은 감상과 동시에 휴식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낮고 단순한 가구는 작품과 풍경을 방해하지 않고, 어느 자리에서도 대릉원의 작품을 함께 조망할 수 있게 한다.
의자에 앉아 창을 바라보고 있으면 햇빛이 강하게 들어올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직사광선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은은한 자연광이 실내를 채우고, 부족한 빛은 천장 일부를 바리솔 조명을 통해 보완한다. 화이트 우트톤 벽면은 깔끔한 배경 덕분에 공간은 더 깨끗하고 선명한 느낌을 공간에 부여한다.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은 조형적인 장면을 만든다. 삼각형을 끼워 넣은 듯한 천장 구조와 세로로 뻗은 창은 공간에 볼륨감을 더한다. 계단을 오르다 고개를 돌리면 창 너머 내부와 외부가 겹쳐 보인다. 밖에서 안을 보고, 다시 밖을 바라보는 시선의 왕복이 공간 경험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옥상에 오르면 박공지붕 위 평평하게 깔린 계단 위에서 오아르미술관이 가진 대릉원의 세 가지 장면 풍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멀리 황리단길의 기와지붕선, 난개발로 형성된 시가지 그리고 대릉원이 그리는 곡선까지. 서로 다른 대비 속에서 주변의 풍경과 건축이 시너지를 이루는 방식을 체감하게 된다.
관람객의 발걸음과 시선을 따라 경주를 다시 읽게 하는 것. 그것이 오아르미술관이 추구하는 또 다른 목표가 아닐까. 전시 연출과 동선에서 느껴진 작은 아쉬움은 결국 풍경과 건축이 어우러진 순간 속에서 잊히고, 남은 것은 경주의 시간을 새롭게 체험한 기억만이 남겨졌을 뿐이다.
글, 사진 | citevoix
- 운영시간
수요일-월요일 10:00-19:00 / 매주 화요일 휴무
*최종입장 18:30
- 전용주차장
미술관, 카페 이용 시 1시간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