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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어가 만든 건축의 풍경

고려제강기념관 (키스와이어센터)

by citevoix



부산 수영구 망미동, 복합문화공간 F1963 바로 옆에는 고려제강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2014년, 고려제강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와이어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 기념관 옆 연수원으로 개관한 이 건물은 주변보다 지대가 높아 시야를 압도한다. 진입부를 제외한 모든 면은 노출 콘크리트 벽으로 구성된 폐쇄적인 외관을 이루며, 외부에서는 내부 공간의 구성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빽빽한 조경에 둘러싸인 모습은 마치 도심 속 성벽 위 요새를 연상시킨다.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F1963에는 종종 들렀는데 바로 옆에 있는 기념관은 번번이 방문에 실패했다. 휴관일이거나, 일정이 맞지 않거나, 한 번은 예약을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돌아선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놓친 끝에 마침내 방문할 수 있었다. 비가 심하게 내리던 주말, 날씨가 좋지는 않았지만 관람객이 아무도 없어 조용히 공간을 둘러보기엔 오히려 더 좋은 환경이었다.




와이어가 만든 건축의 풍경


와이어는 금속을 가늘고 길게 늘여 끈 형태로 만든 재료로, 뛰어난 인장강도와 하중 지지력을 가진다. 스테인리스, 동 , 탄소강 등 다양한 소재로 제작되며, 솔리드 와이어, 와이어로프 등의 형태로 용접, 타이어, 건축 구조 등 여러 산업 분야에 활용된다. 겉보기에 가늘고 유연해 보이지만, 와이어는 서로 엮이거나 장력을 받을 때 높은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최소한의 재료로 큰 하중을 견디는 능력은 대표적으로 부산 광안대교와 같은 현수교 구조에서 대표적으로 활용된다. 뿐만 아니라 와이어의 '당기는 힘'은 엘리베이터, 그네, 줄다리기 등 일상적인 구조 속에서도 폭넓게 사용된다.



기념관과 연수원이 위치한 주동은 진입부만을 열어둔 채, 대부분 땅 속에 묻혀 있다. 외부 조경과 주변 자연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내부 공간들은 서로 밀도 있게 연결되어 다양한 성격과 분위기의 연속적 시퀀스를 이룬다. 원형극장, 수공간, 트레이닝 센터 등 각 프로그램은 선형적으로 배치되어 하나의 단독 건축물이 아닌 유기체적 시스템으로 작동해 건축물 간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공간 경험을 유도한다.



기념관은 와이어의 핵심 특성이자 구조적 강점인 '당기는 힘'을 건축적으로 번역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적용을 넘어, '와이어'라는 소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건축적 상상력이 결합된 시도다.


와이어가 지닌 시각적 투명성과 가벼움은 건축의 언어로도 해석되었다. 1층 홍보관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투명한 파사드와 개방적인 뷰포인트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외부 풍경이 자연스럽게 내부로 스며든다. 내부에 있으면서도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듯한 감각은 와이어가 주는 시각적 가벼움과 맞닿는다.



기념관 입구에서 시작되는 복도는 낮고 어두운 톤으로 시작해 점차 밝아지는 구조를 가진다. 이는 와이어의 장력이 점차 풀리듯, 공간의 긴장감도 걷는 동안 서서히 완화된다. 끝에 가까워질수록 채광과 시야가 열리며 공간적 대비와 몰입의 강도가 극대화된다.



복도 벽을 따라 천장까지 수직으로 긴장감 있게 이어지는 와이어는 방문객이 마치 와이어 속을 걷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불필요한 장식 없이, 콘크리트와 금속 그리고 최소한의 빛으로 구성된 복도는 재료 그 자체의 물성과 긴장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복도를 지나면 기념관의 중심 공간인 무주공간이 드러난다. 와이어뮤지엄은 두꺼운 보나 벽체, 기둥을 최소화한 구조로, 와이어의 장력과 인장 구조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개방감 있는 내부 공간을 구현했다. 불필요한 장식은 과감히 배제하고, 금속, 콘크리트, 유리 같은 단순하고 강한 재료돌로 공간을 구성했다. 이는 재료 본연의 물성과 기능성, 즉 와이어의 산업적 특성과 연결되며, 꾸밈없는 재료의 미학과 김장감을 극대화한다. 낮에는 유리를 통해 자연광이 와이어 사이로 스며들며 그림자를 만들고 밤에는 인공조명이 이 구조적 긴장감을 다시 부각하며, 낮과 밤의 극명한 대비를 공간에 각인시킨다.



중앙에 위치한 공중의 나선형 램프는 독창적인 건축적 특징으로 기념관의 상징적인 중심 요소다. 전체 공간을 관통하는 이 램프는 거대한 와이어 설치물처럼 시각적으로 기능하며,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끌어당긴다. 직선적인 시퀀스를 따라 이동하던 방문객은, 이 곡선 램프 위를 걷게 되며 물리적 체험의 리듬 변화를 겪는다. 마치 팽팽히 당겨졌다가 다시 느슨해지는 와이어의 성질처럼, 이 곡선은 공간적 긴장과 해소의 균형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램프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선을 지나 문 밖을 나오면 갑작스럽게 하늘과 바람이 열리며 긴장이 풀린다. 내부에서 축적되었던 구조적 긴장감은 외부 풍경과 맞닿으며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수 공간을 지나 램프 끝 언덕에 이르면, 연수원을 마주하고 있는 곡면 벽이 등장하는데 지붕 아래 밀도 높은 공간이 있을 거라고 예상이나 할 수 있을까.



언덕을 지나면 외부의 원형극장과 연결되며 다시 처음의 내부 공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일련의 순환은 단순한 출입 동선에 그치지 않는다. 램프 아래에서 경험한 산업적 긴장과 구조 해석은 외부 풍경과 조우하며 해소되고, 그 경험은 다시 일상으로 귀환하는 건축적 여정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흐름은 외부 공간이 단순히 바깥이 아닌, 건축이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음을 보여준다.



고려제강의 매달린 지붕, 연속적으로 돌출된 선형 공간, 공중에 떠 있는 수련시설 등 이 건물의 주요 요소들은 모두 와이어의 재료적 특성과 구조 원리를 응축한 결과물이다. '와이어'라는 재료와 그 기술적 특성은 고려제강이라는 기업의 브랜드 정체성과 건축적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구체적인 건축 언어로 구현되었다.


글, 사진 | citevoix






- 운영시간

화 - 토 10:00 - 18:00 / 휴관일 월요일, 일요일, 공휴일, 대체공휴일, 근로자의 날

- 사전 예약 필수(홈페이지 kiswiremuseum.com), 무료 관람 / 만 13세 이상 (어린이는 보호자 동반 시 입장 가능)

- 고려제강기념관 주차장 이용(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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