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케 'Ecke'
해운대를 지나 미포와 청사포 사이 언덕 중턱에는 '달맞이 동네'가 자리한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 이곳은 오래된 주택과 갤러리 촌, 그 사이 작은 숍들이 어우러져 한적하고 다채로운 풍경을 만든다. 낮에는 방문객들로 활기를 띠지만, 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진다. 이 조용한 동네에 '에케'라는 이름의 건물이 들어섰다.
'에케(Ecke)'는 독일어로 '모퉁이'를 뜻한다. 이름 그대로 코너 언덕배기에 자리한 이 건물은 회색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의 대비로 시선을 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건물은 '카모메키친'과 '코코로 박스'를 운영하는 이효진 대표가 기획했다. 이후 부산 대림맨션에도 리빙 편집숍 '에크루'를 열였고, 논픽션과 갤러리 ERD 등 유사한 브랜드들이 모이며 대림맨션은 감도 높은 리빙 스폿으로 자리매김했다.
대림맨션에서 조용한 브랜드들이 교류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갔던 경험은 '공동체'라는 꿈을 꾸게 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한 공간이 바로 '에케'다. 활기찬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달맞이에 자리를 잡은 것도,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느낌을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
이곳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대부분 이효진 대표와 연결고리가 있다. 자주 찾던 레스토랑, 카페, 편집숍 등 각자의 색을 지니면서도 필요할 땐 함께 어우러지는 '느슨한 공동체'를 이룬다.
건물은 지하 주차장에서 1층 중정을 지나는 입구, 모퉁이를 돌아 올라서면 바로 진입 가능한 2층까지. 어느 방향에서든 진입이 가능하다. 3층부터는 스테이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관의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로 구분 짓는다.
이 느슨한 공동체의 중심은 바로 '중정'이다. 삼각형 대지의 중심에 위치한 중정을 숍들이 둘러싸고, 외부 계단이 이를 관통하며 저층부를 수직으로 연결한다. 어느 방향에서든 창을 통해 중정이 보이며, 계단은 테라스 역할도 겸한다. 중정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자연의 얼굴을 보여주며 모두가 함께 머무는 공간이 된다.
건물 내부의 무드도 인상 깊다. 숍들 사이에는 벽을 내어 구분을 두되, 전체 분위기는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외부 바닥 마감재가 실내까지 이어지고, 벽돌 일부는 간판으로 변형되어 포인트가 된다.
건물을 따라 걸으며 입점 브랜드를 둘러보면 에케의 큐레이션 기준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과하게 고급스럽진 않지만, 자기 색을 뚜렷이 지닌 브랜드들.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따뜻한 무드를 갖춘 곳들이다.
경사로 끝에 자리한 화이트 큐브 공간은 대여 공간으로 운영된다. 때로는 갤러리, 때로는 팝업 공간으로 열려 방문객과 임차인 모두가 '에케'의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다. 사이에 베이크는 해리단길 '모루 과자점'이 새롭게 오픈한 매장이다. 파운드케이크가 특히 인기이며, 레몬 케이크와 당근 케이크 등 아기자기한 비주얼이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바로 옆 소품숍 '마니델 갸또'에는 레진 공예와 뜨개 소품 등 손맛이 담긴 제품들이 가득하다.
이외에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스테이 공간이 함께하며, 이곳에서는 먹고, 마시고, 자고 쉬는 모든 행위가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된다. 시간이 흐르며 자리를 잡아갈 에케가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계절 따라 변화하는 중정의 모습, 공간을 채운 사람들의 활기, 그리고 점점 더 풍성해질 공동체가 앞으로 어떤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 낼지 궁금하다.
글, 사진 | citevoix
- 운영시간
입점 매장마다 상이
- 주차 불가(인근 주차장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