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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기둥 아래서 낮게 앉은 사람들

노원책상

by citevoix



과거 국가의 행정을 담당하던 청사는 오랫동안 '권위의 건축'을 상징해 왔다. 높이 솟은 기둥과 계단, 무게감 있는 돌의 질감, 중심축을 강조한 엄숙한 구조는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 공간의 주체는 국가였고, 시민은 그 앞에서 국가의 질서를 체감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민주주의의 성숙과 지방자치의 확산,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은 행정청사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더 이상 행정은 시민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지 않았다. 소통을 기반으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건축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야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의 공공청사는 '열린 행정'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려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1층에는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로비나 카페, 전시 공간을 두고, 내부 동선은 외부 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중정을 배치했다. 이는 단순히 친근한 건축을 지향하는 것을 넘어, 행정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시민이 제도의 일부로 공간을 경험하도록 유도하는 민주적 장치다. 외관 역시 과거처럼 위엄을 드러내기보다는 투명성과 가시성을 강조한다. 유리 커튼월, 개방형 계단 같은 디테일은 물리적 개방성을 통해 행정과 시민 간의 소통을 유도한다.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사례가 2023년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은 노원책상이다.



구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구청 로비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민원을 처리하는 직원들과 방문객들이 어우러졌고, 길게 놓인 테이블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이 있었다. 딱딱하고 지루하던 구청 로비는 활기찬 분위기로 가득하다.



1990년대의 청사 건축은 계획보다는 필요에 따라 증축되었다. 행정 수요가 늘어날 때마다 건물은 덧붙여졌고, 그 결과 청사는 복잡한 구조와 모호한 중심성을 갖게 되었다. 구청 로비는 명목상 중심 공간이었으나, 실제로는 동선이 단절되고 기능이 뒤섞인 혼잡한 장소였다. 이러한 무질서 속에서 로비를 문화휴게공간으로 바꾸는 개입은 단순히 리모델링이 아니라, 행정 공간에 대한 사회적 재구조화로 읽을 수 있다.



변화된 로비의 외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밝은 색의 테라코타 외벽과 그 아래로 길게 열린 창이다. 기존 청사의 백색 타일과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지면에서 살짝 들어 올려진 벽면과 그 아래 프레임 창호가 전체를 가로지르며 내부의 풍경을 외부로 퍼뜨린다. 높이보다 가로로 펼쳐진 시야는 구청을 찾은 시민에게 휴먼 스케일의 눈높이에 맞춰 투명함과 개방성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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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내부로 들어서면 외부와 동일한 재료로 마감해 내부와 외부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행정건물은 보통 다양한 공공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능별로 공간을 분할해 설계된다. 그러나 노원책상은 오히려 가구의 연속성을 통해 불확정한 공공성을 구현했다. 동일한 재료와 구조로 제작된 가구들은 기능에 따라 크기만을 달리하여 로비 곳곳에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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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프레임 구조를 따른 서가를 시작으로 평상, 벤치, 책상,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 음악 공간에 이르기까지. 가구의 높낮이와 재질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차이는 각 공간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이로써 시민들과의 관계 역시 재구성된다.


과거의 공공청사가 시민을 '부르는' 공간이었다면, 이제 노원책상은 시민이 '머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일시적 방문자가 아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거주자로서의 전환은 단순한 물리적 개조를 넘어 공공건축의 변화를 상징한다. 물론 이러한 공간적 변화는 아직 작고 제한적이다. 그러나 그 작은 개입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결코 작지 않다.


글, 사진 | citevoix

내용참고 | 구보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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