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도시, 머무는 숲

오테마치 포레스트

by citevo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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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치타워의 지하 보행로를 빠져나와 오테마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오테마치빌딩을 지나고 닛케이신문사 본사 로비를 가로지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걸음이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각각 다른 기업이 소유한 건물, 서로 다른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공간인데도 지하로 내려가도,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도 그 과정이 어색하지 않다. 이동 동선은 개별 건축물의 경계를 넘어 이 일대를 하나의 거대한 조직처럼 엮어낸다. 도시는 각각의 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그 흐름 한가운데 거대한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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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점이 아니라 흐름이 될 때


도쿄 오테마치-마루노우치-유라쿠초, 이른바 OMY 지구는 일본을 대표하는 중앙업무지구다. 오랜 시간 금융기관과 대기업 본사가 집중되며 일본 경제의 중심지로 기능해 온 이곳은 에도 시대 다이묘 저택이 자리하던 정치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근대 이후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로 전환되면서 OMY 지구는 일본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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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통적인 중앙업무지구(CBD)가 가진 기능 집적 구조는 1990년대 이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건물의 노후화, 열악한 보행 환경, 국제 금융 중심지 간 경쟁 심화라는 다양한 문제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업무 기능이 과도하게 밀집된 공간은 효율적 수 있으나 도시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래 머물고 싶거나, 걷고 싶거나, 다시 찾고 싶은 장소가 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앙업무지구는 일을 하는 곳이지 경험하는 곳이 아니다. 낮에는 끊임없는 에너지로 가득하지만 저녁이 되면 급격히 비어버린다. 기능만 채우고 감각은 비워버린 공간. OMY 지구 역시 그런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민간 디벨로퍼는 공공-민간 협력을 바탕으로 지구 재편에 나섰다. 업무 기능만을 밀도 높게 쌓아 올리는 대신, 상업과 문화, 체류와 보행의 질을 결합한 복합적인 도시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이는 기존의 단순한 재개발과는 다른 접근이었고, 이 과정에서 도시 경쟁력의 기준도 달라졌다. 얼마나 많은 기능이 집적되어 있는가 보다, 얼마나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 경험을 만들어내는지가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됐다. 그리고 이 전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오테마치 포레스트다.



도심 속에 숲을 심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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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테마치 포레스트는 오테마치 저층부에 조성된 약 3,600㎡ 규모의 도심형 생태 공간이다. 전체 대지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 거대한 녹지는 단순히 건물 앞에 붙은 조경이 아니라, 건축과 일체화된 도시 숲에 가깝다.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이 도시 외부의 배경이 아닌 내부에 직접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통 공원은 건물 바깥의 별도 공간으로 존재해 도시의 다른 기능과는 분리된 채 인식된다. 그러나 오테마치 숲은 다르다. 수평적으로는 주변 공개공지와 상업, 업무 기능과 연결되고, 수직적으로는 지하 보행 공간과 선큰, 지상부가 하나의 연속된 구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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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보면 건물이 나오고, 다시 숲이 나타나고, 또 다른 도시 장면이 이어진다. 이 반복은 보행자에게 새로운 도시 풍경을 받아들이게 한다. 숲은 특정 목적지가 아니라 도심의 일부이자, 멀리서 바라보는 시각적 대상을 넘어 걸으며 경험하는 구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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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에는 도심 안에 거대한 조경 공간을 세련되게 들여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숲은 단순히 자연을 연출한 결과물이 아니다. 오테마치 포레스트는 도쿄 인근 산지에서 식생을 먼저 적응시킨 뒤 현장으로 이식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다양한 층위의 식생을 구성하고, 식물 간 상호작용과 생존 가능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이는 숲이 단순한 조경이라기보다 관리와 시간, 기술이 통합된 하나의 생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도시 외부에 있어야 한다고 여겨졌던 자연이 이제는 도시 중심부의 경쟁력을 구성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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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길이 풍경이 되는 순간


이곳을 지나며 가장 인상적이다라고 느꼈던 부분은 오히려 지상보다 지하에 있었다. 오테마치역 방향 지하 보행로를 따라 걷다가 선큰 플라자에서 들어서면 답답하던 시야가 서서히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야는 점차 넓어지면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위로 향한다. 수직으로 뻗은 유리 사이로 자연광이 깊숙이 내려오고 덕분에 지하 공간 특유의 폐쇄감은 완화된다. 동시에 위와 아래가 동시에 인식되는 입체적인 감각이 생긴다. 그 감각을 가진 채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정면으로 도시의 풍경과 숲의 풍경 그리고 지하의 공간이 한 장면처럼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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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보행 공간은 원래 기능에 집중된 공간으로 목적지에 가장 빨리 도달하기 위한 통로에 가깝다. 하지만 이곳에서 연결된 동선은 다르게 작동한다. 시선이 머물고, 빛을 받아들이며, 걷는 행위 자체를 즐거운 경험으로 바꾼다. 보행자는 자연의 식생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지상 공간과 상부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입체적 시퀀스 속에서 도시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다. 도심에서의 이동이 지금까지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편리하게,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효율의 언어로 설명되었다면, 이곳에서는 도시를 체험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숲이 머무름의 가치를 만들 때


오테마치 포레스트 위에 자리한 오테마치 타워는 오피스와 상업시설, 호텔이 결합된 복합 건물이다. 저층부의 숲은 이 복합 프로그램 전체를 지지하는 환경적 기반으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특히 상층부의 아만 도쿄는 도심 한복판에서 고요함과 절제된 체류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인데, 이때 저층부의 오테마치 포레스트는 단순한 조경이 아닌 건물 전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시작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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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지나 건물로 진입하고, 다시 상층부의 정제된 공간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방문객은 자연, 건축, 서비스, 체류가 서로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서사처럼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점에서 오테마치 포레스트는 단순히 쾌적한 오픈스페이스를 제공하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복합 개발의 브랜드 가치와 장소성을 생산하고, 동시에 OMY 지구 전체가 지향하는 새로운 도시 경쟁력의 모델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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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다시 느끼게 하는 방식


건축과 숲, 지하와 지상, 이동과 머무름. 이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된 거대한 도심 숲은 자연이 더 이상 도시 외부의 풍경에 그치지 않고 내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을 걷게 하고, 머물게 하고 결국 기억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숲의 존재하는 이유다.


도시를 다시 매력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덧붙이는 일이 아니다. 이미 그곳에 있던 흐름을 다시 느끼게 하고, 서로 단절되어 있던 감각들을 다시 연결하는 일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오테마치 포레스트는 도시의 미래를 가장 느린 방식으로, 그러나 분명한 감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 볼 수 있다.


글, 사진 | citevo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