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에서 일주일 (3)
단양이냐, 영주냐 : 정도전의 출생지
온달관광지가 서울의 아차산성을 연상시켰다면 도담삼봉은 종로의 삼봉로와 삼봉도서관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온달산성은 아차산성과 일종의 경쟁관계라면 도담삼봉은 종로의 삼봉 관련 시설들과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자는 보완적이다.
삼봉 정도전은 단양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관직을 하면서 개경으로 올라가서 활동을 했다는 설과 영주에서 태어났고 단양은 외가집이라는 주장이 있다. 단양과 영주에서는 이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있는데, 외부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의학시설인 제중원이 세브란스병원(연세대학교 의대)의 전신인지, 서울대학교 병원(서울대 의대)의 전신인지 만큼 다른 사람 얘기처럼 들리기는 한다. 짧게 정리하면 제중원은 1885년 고종의 명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서양식 왕립병원으로 처음에는 광혜원이었지만 13일 만에 제중원으로 바뀌었다. 1884년 갑신정변 때에 부상을 입은 민영익을 구해준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 호레이스 알렌이 제중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설치는 조선이 했지만 운영은 북장로회가 하는 방식이었다. 1895년에 제중원의 운영을 북장로회가 하게 되면서 이후에 북장로회가 세운 세브란스로 이어졌다는 게 연세대학교의 주장이라면 서울대학교에서는 고종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근대의학에 대한 국가 차원의 교육이 제중원에서 제중원 의학당으로부터 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서울대학교 병원은 국립근대의학시설, 국립근대의학교육기관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발 떨어진 사람에게는 얼마나 중요하겠냐만은 세브란스와 서울대학교 병원은 홈페이지에서, 각자의 전시관을 통해서 아직도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두 병원 모두 자신의 정통성과 직결되는 사안이니만큼 한치의 후퇴도 없다. 서울대학교 병원은 병원 본관 앞에 제중원 뜨락이라는 거대한 돌덩어리를, 세브란스는 제중원의 모양을 재현해서 "연세 역사의 뜰(수경원)"로 사용하면서 제중원이 연세대학교(연희전문 + 세브란스)의 뿌리임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 터에는 최초의 제중원이 만들어진 터를 표시하는 표지석이 있다.
정도전의 고향이 단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도담삼봉은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그러나 영주 설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삼봉은 도담삼봉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들에 따르면 정도전이 부모상을 한 해에 당해 고향 영주에서 4년 가까이 시묘살이를 했고 1369년에 다시 삼각산에 있던 집으로 돌아가서 후학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삼각산의 형세를 따라 주위에서 삼봉(三峰)이라고 불렀고 자신이 운영하던 학당을 삼봉재라고 불렀다고 주장한다. 단양에서는 정도전의 첫 관직이 인근인 충주에서 시작되었으며 힘들 때마다 도담삼봉에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정자를 지었다고 주장한다. 정도전의 출생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아차산성과 온달산성의 논쟁에서 처럼 한 두 가지의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도담삼봉과 석문은 너무나 아름답다
도담삼봉은 단양의 상징이다. 단양군의 로고는 도담삼봉과 석문으로 한문의 단(丹)을 형상화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로고보다도 의미가 있는데, 다만 색깔이 많은 지자체들에서 사용하고 있는 파란색과 녹색으로 되어 있어서 형태 상의 특성이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고 한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단(丹)으로만 보이는데, 80년대 베스트셀러인 민족주의 소설 "소설 단"의 강력한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 소설 책을 연상하게 할 것같다. 도담삼봉은 단양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단양역의 역사도 도담삼봉을 따라서 설계되었다. 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장군봉과 좌우에 있는 처봉과 첩봉을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도담삼봉의 감동보다는 못하며 단양군의 로고에서 그려내고 있는 도담삼봉보다는 운치가 없다.
석문까지 가는 길이 험하다고 해서 도착하자 마자 석문으로 먼저 향했다. 가는 길은 가파랐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의 지형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이 있는데 역시 석회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지형이라고 한다. 석문 사이로 보이는 건너편의 마을과 남한강은 마치 액자에 걸려있는 풍경화와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도담삼봉은 김홍도, 겸재, 이방운 (아래 사진 참고) 등이 그린 도담삼봉과는 사뭇 다르다. 충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면이 상승하면서 아래 부분이 잠겨서 지금은 마치 모자처럼 보이지만 조선 시대의 그림을 보면 요트의 돛처럼 강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들이 신화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었다.
도담삼봉에서 물끄러미 긴 시간을 보냈다. 도담삼봉은 단지 남한강 특정 지점에 있는 세 개의 바위가 아니라 건너편의 마을, 더 뒤에 있는 소백산맥, 좌우로 넓게 퍼져있는 남한강과 어우려지는 평화로운 모습이 일품이었다. 비록 뒤편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이 있고 우리나라 관광지가 다 그렇듯, 기념품 가게와 비슷비슷한 향토식당들이 있지만 적어도 도담삼봉을 바라보는 곳 만큼은 기대 이상으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특히 건너편 마을이 요란스럽지 않게 조용하게 자리하고 있어서 더욱 좋았다.
삼봉스토리관의 아쉬움
미처 몰랐지만 삼봉스토리관이 주차장 입구 쪽에 있어서 들어가 봤다. 가는 길에 있는 상가 건물 3층에는 삼봉스토리관 등 단양의 여러 관광시설을 운영하고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단양관광공사가 보였다.
들어가는 사람이 얼마 없어서 불안했지만 과연 정도전은 여기에서 무엇을 했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들어가려고 했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는 지 매표소 밖에 일하시는 분이 나와계셨다. 2,000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이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전시였다. 온달전시관에서도 비슷했지만 컨텐츠가 빈곤했다. 삼봉스토리관에서는 정도전에 대한 많은 얘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도담삼봉 자체에 대해서도 위키나 관광안내서에 있는 내용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도담삼봉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빈곤한 결과는 어딜가나 비슷한 컨텐츠로 이어진다. 단양팔경, 단양의 특색있는 지질공원 등 각각은 물론 의미있고 유익한 내용이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무엇을 보더라도 절반 정도가 동일한 컨텐츠가 낮은 밀도로 있을 경우에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도담삼봉 만으로는 충분한 컨텐츠가 나오지 않는다면 단양팔경의 제1경이 도담삼봉이라는 점을 들어 단양팔경에 대한 출발점으로서의 역할을 하거나 아니면 단양의 상징이니 단양을 소개하는 곳으로 컨셉을 잡고 조금더 밀도있게 구성하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작은 기초지자체에서의 인적, 물적인 한계를 고려하면 보다 좋은 컨텐츠를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스토리관의 규모와 공간을 생각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들어가자 마자 집중도가 떨어지는 도담삼봉의 축소판이 나오면서 컨텐츠 밀도가 낮은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는 공간구성은 조명이건 전시물의 배치 등을 통해서 개선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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