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으로: 단양적성비

단양에서 일주일 (4)

by Cities in Context

단양적성비를 찾아가기


중학교 때이던가, 고등학교 때이던가. 국사 시간에 단양적성비에 대해서 배웠다. 대강 이런 식의 얘기였다. 한강유역은 삼국시대 때 세 나라의 각축장이었다. 수운을 확보할 수 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있는 한강 유역을 누가 점령하는가는 초미의 관심사였고 각각 자신의 전성기 때에는 한강유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4세기 백제 근초고왕, 5세기 고구려 장수왕, 6세기 신라의 진흥왕이 각각을 대표하는 사람이었으며 결국에는 삼국을 통일하는 신라의 경우, 한강 유역으로 진출했다는 표지를 단양적성비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내용이 기억나는 내용이다.


단양적성비를 찾는 길은 쉽지 않았다. 네비게이션을 켜고 단양 시내를 출발해보니 단양역을 지나서 강변을 따라 가다가 <단양팔경휴게소> 근처로 가면 되는 거 같았는데, 마지막에 회전이 많은 것처럼 안내를 하고 있었다. 가는 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어떤 마을로 들어가서 -- 알고보니 단성면 -- 가까스로 교행이 되는 산길을 돌면서 올라가다보니 중앙고속도로의 단양팔경 휴게소 직원분들이 출퇴근할 때 사용하시는 주차장 옆에서 단양적성비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관광지는 당연히 아니지만 이렇게 진입로가 관리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올라가다 보면 단청이 있는 구조물이 "여기는 역사 유적입니다"를 말해주는 듯하다. 그래도 국보 198호인데, 이렇게 관리되는 것인가 싶었지만 다른 한편, "누가 여기까지 오겠어"라는 마음이기는 하다. 나무위키에서도 가장 빠르게 오는 방법은 단양팔경휴게소 상행선에서 걸어오는 거라고 하고 있다.



단양적성비란


막연하게 단양적성비는 축성을 기념하는 비석이 아닐까 했는데, 한자가 달랐다. 赤城碑는 당시 지명인 적성을 따라서 지어진 것이다. 현재의 성재산의 정상에 있는 적성산성 내에 있는 단양 적성비는 영토확장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 대한 얘기 뿐만 아니라 향후에 공을 세우게 되면 어떤 상을 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을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의 주요 신하들의 이름과 비교할 때, 약 550년 경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며 당시에 고구려 영토였던 단양의 백성들을 유화하려는 내용도 보인다고 한다. 아마 이런 연유로 온달산성이 고구려의 영토를 수복하려는 온달장군의 마지막 전투 장소였다고 보는 까닭이겠지만 온달산성의 축성방식이 적성산성의 축성방식과 너무나 유사해서 '수복해야 하는' 고구려의 영토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영토를 크게 확장했던 진흥왕은 네 개의 순수비를 건립했다. 북한산, 창녕, 황초령, 마운령에 있는 순수비(巡狩碑)는 "왕이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며 살피다"라는 의미가 있어서 진흥왕이 직접 현장에 왔음을 기념하는 비석이지만 단양의 적성비는 진흥왕의 신하인 이사부 장군과 부하들이 적성을 공격한 것을 기념하고 당시 적성의 토착민인 '야이차'를 포상했다는 내용만 있어서 순수비와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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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진 마을


돌아오는 길에 이정표에서 단성역을 보고 방향을 틀어봤다. 역시 수몰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충주호로 수몰되기 전에는 단양역이었던 곳이 수몰 이후에는 단성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보는 단양읍의 다운타운은 30-40여년 전에 만들어진 신도시라면 단성역 주변 일대가 과거의 다운타운이었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단양이 잘 정리된 느낌을 주는 이유는 바로 수몰의 역사 때문이다. 중요한 도로를 두고 한 쪽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들이 있고 반대편에는 법원, 군청, 터미널, 병원 등 주요 공공시설들이 있는 현재의 단양읍의 모습은 문이 닫혀있는 단성역의 모습과 함께 이해해야 단양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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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비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도 탑이 있길래 들어가봤던 곳이 있다. 적성비가 있는 곳이 지대가 높아서 1500년 전에도 주변의 움직임을 모두 볼 수 있는 지역이라서 풍수지리적 이유로 각종의 비석이 있을 수는 있지만 너무 비석들이 많았다. 가까이 가서 읽어보니 수몰 마을에서 옮겨놓은 비석들이었고 옆에 있는 건물은 아무도 없는 수몰이주기념관이었다. 아마도 수몰된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만들어졌을 거다. 40년이 지난 이방인의 눈에는 아름다운 강 뿐이지만 (아마도 태어나서 살아온) 마을을 떠나야만 했을 주민들의 눈에는 지금도 마을이 보이고 밭이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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