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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 케인 Apr 28. 2021

진짜 페미니즘에는 핑계가 없다.

평등을 추구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기계적, 형식적 평등이며 두 번째는 상대적, 실질적 평등이다. 우리는 평등에 대하여 논하기 이전에 이 점을 숙지해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처우에 많은 불평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주장하는 평등은 두 번째 평등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먼저 첫 번째 기계적 평등은 매우 단순하다. 하나의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에 따른 대우를 하면 평등한 것으로 취급한다. 반면 두 번째 상대적 평등의 경우는 복잡하다. 개개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맥락을 파악하여 평등의 정도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 대학에서 소수민족 출신들에 대한 가점을 주는 것이 대표적인 상대적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많은 불만은 이 부분에 집중된다. 상대적 평등의 기준과, 그것을 평등하게 맞추는 방식에 대한 합의는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계적 평등을 옹호하는 자들은 능력주의에 기반한 보상을 원하는 것이고, 상대적 평등을 옹호하는 자들은 기회의 평등의 보장을 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있어 두 가지 중요한 가치가 충돌할 때 딱 잘라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둘 때,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평등을 외치는 것은 기계적 평등이 아닌 상대적 평등에 기반한 것일 테고, 이는 남성들이 우위를 차지하는 부분에 대해서 자신들의 몫을 '할당'하라는 그들의 주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소수민족 가점제도를 근거로 바라볼 때,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이 오랜 기간 존재해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많은 범죄에 노출되어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여성들에 대한 일부 사회적 배려는 분명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역풍을 맞고 많은 남성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것에는 페미니스트들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잊은 채 자신들에게 유리한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기계적 평등, 실력에 기반한 보상을 말이다.

기계적 평등은 배척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기계적 평등은 그 기준만 합의가 된다면 그 이후로부터는 모든 것이 개개인의 실력이 모든 것이다. 반면 상대적 평등은 그 기준이 약자를 위한 기준으로까지 다양화되어야 하고, 기준이 다양화될수록 그 설득력은 떨어진다. 약자를 배려하느라 억지로 부적격자를 밀어 넣을 가능성을 높이기에 결국 전체의 성과를 하향 평준화하게 된다. 그리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다른 선택지가 없는 약자만이 남아 파멸하고 만다. 즉, 기계적 평등 없이 상대적 평등만을 따진다면 무능한 인간들이 무능을 장점삼아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사실에 너무도 오래 눈을 감아왔다. 여성들을 위한 배려와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다방면으로 자격미달의 여성들을 할당하길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남성들이 겪는 억압에 대해선 무시했으며, 남성들에 대한 배려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 목 높여 부르짖었다. 어째서 남성은 상대적 평등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걸까? 남성은 모든 부분에서 여성에 비해 우월하다는 암묵적 인정인 것일까? 실상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이야말로 여성들의 능력을 평가절하하고 그들을 보호와 배려의 대상으로 한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이 배려받아야 할 부분은 노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생물적 한계와 범죄에 대한 노출에 대한 것이어야 하는데 페미니스트들은 이것을 가장 공정해야 할 부분까지 확장시키려 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려받아야 한다면 또 다른 계급화와 다름없는 것인데, 페미니스트들은 평등을 외치며 계급을 형성하려 한다. 사회적으로 억압받은 경험을 과대평가하여 그 보상을 과잉 요구한다. 실상 보험사기와 다를 것이 없다. 경미한 찰과상을 전치 4주로 포장하여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결론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평등은 평등을 가장한 계급화이며, 그들이 진짜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내뱉는 이러저러한 헛소리들은 핑계에 불과하다. 월경을 겪는 것에 대한 배려는 월경 휴가를 보장하는 것으로 될 일이지 힘든 보직에 가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출산을 하는 것에 대한 배려는 출산 휴가를 보장하는 것으로 될 일이지 군대를 가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여성이 힘이 약한 것에 대한 배려는 일상에서 이루어지면 될 일이지 프로페셔널의 영역에 가져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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