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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 케인 May 01. 2021

거짓된 희망은 더욱 고통스럽다.

양치기 소년의 우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늑대가 왔다는 거짓 경보를 울리던 소년은 정작 진짜 늑대가 왔을 때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간단하다. 거짓을 이야기하는 자는 결국 진실의 순간에 위기를 맞는다는 것이다.


우한폐렴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지 1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다. 세계에는 여전히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중이며 그 기세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감염자와 사망자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변이 바이러스가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이러스의 대유행에 타격을 입은 세계경제는 그 명맥을 잇기 위해 무제한적인 화폐 발행에 의존하고 있고, 어마어마하게 풀린 화폐에 중독된 사회는 아편굴의 끔찍한 마경처럼 온갖 욕망과 투심이 뒤섞여 악취를 더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부작용은 후세에 전가한 채 겁에 질린 타조처럼 머리를 바닥에 박아 넣고 자기는 모르는 일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거짓된 희망은 사람들의 사고를 마비시킨다. 아니, 모든 일은 잘 풀리지 않는다. 당신이 진실을 제대로 마주 보고 그것을 고치기 전에는. 지난 1년 5개월간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된 희망을 좇았기 때문이다. 신이 자신을 지켜준다는 거짓된 희망. 어느 날 마법처럼 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이라는 거짓된 희망. 이전의 삶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짓된 희망. 이 모든 거짓은 바이러스라는 진실 앞에서는 무력하게 무너진다.


자연의 법칙은 정직하다. 자연에는 거짓이 없다.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은 마법에 걸린 것이 아니다. 걸릴만했기에 걸렸을 뿐이다. 진실은 단순하다. 바이러스는 전파된다. 그리고 전파되지 않으면 비활성화된다. 따라서 방역의 원리는 간단하다. 전파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단순한 진실에 돈과 정치, 그리고 종교가 들러붙어 거짓된 희망을 퍼뜨리는 데에 있다.


진실은 이렇다: 바이러스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전의 삶을 회복할 수 없다.


진실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거짓된 희망은 더욱 고통스럽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몇 차례나 겪어보지 않았는가? 대통령이 나서서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든지, "긴 터널의 끝"이라든지, 사람들에게 거짓된 희망을 불어넣을 때마다 바이러스는 다시 극렬하게 퍼져나갔다.


또한 인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바이러스가 종식된 것이 아니라는 진실에서 눈을 감은채 정치와 종교를 위해 거짓된 희망에 몸을 던짐으로써 최악의 바이러스 인큐베이터가 되어버렸으니, 그들이 말하는 업보(Karma)가 이런 것일까? 이 시대의 진정한 역병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나약한 인간에게 심어진 거짓된 희망인 것이다.


게다가 모순적이게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식량의 30%가 버려지는 상황에서조차 굶어 죽을까 두려워 방역조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많은 저소득층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데믹이야말로 우리 인간 사회가 얼마나 부자연스럽게 자원을 분배하고 있는지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데믹을 통해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자멸 전조가 아닌가 한다. 거창한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그저 자연과 환경이 우리의 삶을 뒤집어 놓으니 말이다.


판데믹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종식을 떠드는 미디어와 정치를 믿지 말라. 단순한 자연의 법칙을 믿어라. 바이러스가 국지적 전염병이 아닌 전 세계로 퍼 저나 갔고, 이미 1년이 넘게 지났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공기 전염되는, RNA 바이러스가, 알려진 것만 해서 세계 인구의 50분의 1을 감염시켰다. 비공식적으로는 과연 얼마일까?


백신을 기대하는가? 인플루엔자 백신을 맞는다고 해서 독감에 걸리지 않던가? 이제 RNA 바이러스가 빠르게 변이 한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백신에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백신을 맞는다면 그 치명률이 줄어들어 만일 우한폐렴에 걸리더라도 기존의 독감처럼 지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대일 뿐이다. 기존의 항체가 변이에 대해 작용하는 것을 가정할 때의, 즉 거짓된 희망이다. 실제로는 아무런 확신이 없다.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항체가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한 데이터도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백신을 맞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다시 이전의 삶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은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계속하는 것과 다름없다.


만일 백신을 무력화하는 변이가 나타나고, 백신을 맞고서 안심한 이들이 이런 변이에 감염되어 새로운 확산에 기여한다면, 거짓된 희망에 질려버린 사람들은 더 이상 통제에 따르지 않을 것이며, 그간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된 채 적자생존의 법칙에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그리고 희망을 잃어버린 사회는 미래를 저당 잡아 발행했던 화폐 잔치의 후유증으로 하나둘씩 무너져 내릴 것이며, 이 불쌍한 겁에 질린 타조는 모가지가 비틀어져 하이에나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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