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힐링여행 Day 01
10년 전 8월, 대학원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자
1년 동안 딱 1주일 주어진 휴가 기간에, 홀로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일주 여행을 했다.
예상치 못한 태풍으로 인해 정신없이 페달을 밟느라, 원래 계획했던 '생각 정리'는 물 건너갔지만..
그만큼 '깨끗해진 머리(?)'로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고, 남은 한 학기도 무사히(눈물겹게) 보낼 수 있었다.
당시에 첫 숙소로 묵었던 곳이 애월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였는데, 도미토리에서 만난 한 언니가 인상에 깊게 남는다.
배낭 하나 메고 와서 이 숙소에만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일어나면 숙소 앞바다에서 수영하고 낮잠 자다가 배고프면 먹고 또 수영하고 쉬고~
'여행이란 자고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지!'라고 생각했던, 20대 청춘의 나에게는, 이 언니의 게으른 여행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대학원 졸업 이후에 취직한 첫 회사에서 10년 근속 기념으로, 3일의 휴가를 받았다.
이에 연차를 붙여서 #나홀로힐링여행 계획 중에, 갑자기 이 언니가 생각났다.
항상 끝없는 계획 속에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던 내가, 정해진 것 없이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까..? 궁금하기도 했고.
과거의 10년을 정리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기도 했고.
물놀이를 좋아하지만 기회가 잘 없었기에, 혼자 실컷 잘 놀아보자..! 싶기도 했고.
언니를 만났던 숙소를 다시 검색해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심지어 1인실 게하로 운영 중이었다!
바로 연박으로 예약을 하고, 게으른 여행을 위해 렌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생애 두 번째로 나 홀로 떠나는 국내 여행날!
내가 제주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떠나기로 예정하고 있는 그날까지, 비 소식(feat. 뇌우)이 가득이다.
나의 바다 수영은...? 스노클링은...? 서핑은...?
여행을 취소할까, 고민도 해봤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우선 단행하기로 했다.
뚜벅이 여행자답게(!) 숙소까지 버스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캐리어는 무거웠고 가는 길은 멀었다 ㅠㅠ
다행히 숙소에서 미리 안내해준 콜택시 번호가 있어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호출하여 편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
기사님도 너무 친절하셨고, 공항에서 출발하는 콜택시는 요금 할인(콜비도 없음)까지 해주셔서 기분 좋게 여행 시작~!
숙소에서 사장님께 이곳에 오게 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도미토리는 짧게 운영했던 터라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너무 반가워하셨다 :)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해보니, 일주 여행을 했던 게 10년 전이 아니라.. 11년 전이다. 2010년!
이렇게 나의 기억의 오류를 바로 잡고 간다..ㅎ
첫날은 다행히 비가 안 와서, 그나마 산책을 하며 밖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
앞으로는 아마 집콕하면서 빈둥거리지 싶다.
집에서라면 쉽사리 읽히지 않을 철학책과 일기장, 펜, 아이패드와 함께라면
왠지 집콕 제주 여행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