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오션 Bar Ocean
커피바케이에서 만난 센고쿠상에게 바 오션을 소개받고 이틀 뒤쯤 그곳에 찾아갔다. 카구라자카에 있다가 도자이선을 타고 니혼바시역에 내려 조금 걸었다.
위치는 도쿄역 근처의 주오구 야에스였다. 예전에 은희와 두 시간을 기다려 규카츠를 먹었던 바로 그 동네였다.
긴자와 같은 주오구이지만, 긴자처럼 바가 밀집되어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리값인 커버차지가 낮았고, 전반적으로 가격의 거품이 긴자보다 덜했다.
자리에 앉자, 센고쿠상이랑 친분이 두터운 다카하시상이 환대해주었다. 센고쿠상이 바 오션에서 꼭 마셔보라고 추천했던 얼그레이 칵테일을 부탁했다.
얼그레이 리큐르와 샴페인이 들어간 칵테일이었다. 이름은 없었다.
이름이 없다고 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마셨는데 놀라만큼 맛있었다. 홍차의 쌉싸름한 맛과 샴페인과 레몬주스의 상큼함이 적절히 어우러진 완벽한 밸런스였다. 지금까지 도쿄에서 마셔본 칵테일 중 가장 맛있는 한 잔이었다.
그 한 잔 때문에 다음에 도쿄에 또 오게 되면 바 오션을 또 방문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름을 알아야 다음에도 시킬텐데.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센고쿠상의 얼그레이 칵테일 부탁한다’며 저 사진을 내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칵테일의 이름이나 사진보다 더 중요한건 다카하시상 그 자체였다. 그가 없으면 레시피도 없고, 칵테일도 없다. 그는 바의 주인도 아니며, 주인 대신 가게를 돌보는 견습생 느낌의 점원이었으나 나에겐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
도쿄 로컬인 센고쿠상이 추천한 바 오션. 역시 로컬이 추천한 가게가 알짜였다. 서울에서 소개받은 긴자의 바들보다 가격과 서비스면에서 모두 훌륭했다. 그럼에도 서울에선 이 바에 대해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야말로 숨겨진 진주였다.
단골인 센고쿠상의 소개로 와서인지 다카하시상은 정말 친절했고, 그곳에서 나오시마와 오카야마 여행 등을 이야기하며 상당히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은희와 다시 도쿄를 찾았다. 나는 그동안 누누히 도쿄에서 가장 훌륭한 바는 바 오션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우리는 디하트맨이라는 다른 바에서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지만 얼그레이 칵테일을 그녀에게도 소개해주고자 바 오션으로 향하는 계단을 한 번 더 내려갔다.
그런데 바에는 50대로 보이는 오너 바텐더 한 명 뿐이었다. 나는 불길함을 느끼며 다카하시상은 어디있냐고 물었다. 오너는 다카하시상은 휴가라고 했다. 골든 위크를 맞이하여 휴가를 간게 틀림 없었다.
다카하시상도 없고, 심지어 칵테일의 이름도 없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1년 전의 칵테일과 얼그레이 리큐르와 샴페인 사진을 보여드렸다. 오너는 슬픈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모르는 칵테일입니다.”
그것은 다카하시상의 머릿 속에만 있는 칵테일이었다. “하지만 제가 만들어 보겠습니다.”
사진만 보고 최선을 다해 만들어 주신 칵테일. 안타깝게도 붉은 빛을 띠는 빛깔부터가 다카하시상의 칵테일과 달랐다. 한 입 마셔보니 술도 많이 들어갔고 얼그레이향보다는 산미가 훨씬 강해서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경력이나 원숙함은 오너를 따라올 수 없겠지만, 원작자의 독창성과 오리지널리티는 다카하시상이 한 수 위였다. 1년 후 오너가 만든 얼그레이 칵테일을 마시니 다카하시상이 더 대단해 보였다. 그가 없으니 내 기억 속 도쿄 최고의 바였던 바 오션은 평범한 칵테일바로 변하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떠나기전 마지막 날에 한 번 더 방문했으나 다카하시상은 긴 휴가를 떠났는지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결국 1년 전 마셨던 얼그레이 칵테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신 단 한 잔의 도쿄 최고 칵테일이었다.
Kathie
식도락과 예술, 도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공간 그 자체에 대한 글을 씁니다. 도시의 자연과 로컬문화를 사랑하므로, 여행에세이보다는 도시에세이를 지향합니다. 여행에세이 <나고야 미술여행>을 썼고, 도시에세이 <나는 아직 도쿄를 모른다>를 연재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