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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Apr 18. 2018

추울 때도 더울 때도, 야부 소바

우에노

2017년 도쿄 여행 때 6일, 2018년 1월과 4월에는 도합 일주일을 묵으며 거의 보름에 가깝게 우에노에 있어서 도쿄에 갈 때마다 우에노가 나의 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에노에는 꽤 맛있는 곳이 많다.

관광객의 흥분된 시선이 아닌, 생활자스러운 담담한 시선으로 지냈기 때문인지 화려함은 부족하지만 소소하게 맛있는 맛집들을 꽤 발견했다.

Yabu Soba, Tokyo, January 2018

그 중 하나가 야부소바였다.
원래 야부소바는 간다에 본점이 있어서, ‘간다 야부소바’로 유명하다. 운이 좋게도 우에노에도 분점이 있었다.




#1 추울 때는 온소바


Yabu Soba, Tokyo, January 2018

우에노의 숙소에 여장을 풀고 요깃거리를 찾다가 야부소바에 들렀다.

Yabu Soba, Tokyo, January 2018

2층까지 자리가 넉넉히 마련돼 있었다. 한국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일본색이 강한 조용한 분위기였다. 구석 자리에서 일본인 샐러리맨이 아무 토핑도 되어 있지 않은 기본 중의 기본, 세이로소바를 먹고 있었다.

Yabu Soba, Tokyo, January 2018

종류가 다양해 무얼 골라야할지 어려웠다. 겨울 시즌메뉴로 굴이 들어간 온소바를 팔고 있었다.

Yabu Soba, Tokyo, January 2018

점원 아주머니의 추천을 받아 표고버섯과 계란, 어묵이 들어간 소바를 주문했다. 표고버섯에서 우러나온 진한 국물은 말할 것도 없이 맛있었으며, 큼직하고 탐스러운 계란은 계란초밥에 올라가는 살짝 달짝지근한 계란 같았다.

지난 봄, 도쿄 방문 때 먹었던 시로카네다이의 토시앙보다 맛있었다. 국물도 국물이지만 면발이 으뜸이었다. 마치 가가와현에서 먹는 우동의 소바 버전 같았다.

Yabu Soba, Tokyo, January 2018

추운 겨울날, 따뜻한 소바 국물을 먹으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유명한 소바집답게 훌륭한 맛이었다.

‘소바는 차가운 것’이라는 편견을 날려버린 한 그릇이었다.




#2 더울 때는 냉소바


서너달 후, 프로도 미술관 벨라스케스전 때문에 다시 도쿄를 방문했다. 이번에는 은희와 함께였다.

우에노 사쿠라기, 다이토구, 도쿄
시노바즈 연못, 우에노, 다이토구, 도쿄

우리는 아침에 우에노 사쿠라기에서 아침을 먹고 야나카를 산책했다. 그리고 시노바즈 연못과 우에노 공원을 지나 아메요코 시장에 도착했다.

4월 말인데 체감 날씨는 여름이었다. 햇살이 꽤 따가워서 더위를 먹은 것 같았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은희는 예전에 내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야부소바가 궁금하다고 했다. 더운 날에는 냉소바가 딱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기줄이 있었다. 겨울에는 대기 없이 바로 입장했는데 아침도, 점심도 모두 웨이팅이 있다. 겨울엔 어디에 가더라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봄은 날씨가 좋아서인지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아서 30분 대기는 기본이다.

30분을 기다려 식당 2층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날이 더우니 당연히 냉소바를 골랐다.

야부소바의 오리고기 소바, 우에노, 도쿄

그런데 주문한 음식을 받아보니 국물 그릇이 따뜻하다. 우리나라의 냉모밀처럼 국물에 얼음이 떠있을 줄 알았는데, 국물은 여전히 따뜻하고 소바면만 차가울 뿐이었다. 처음엔 국물이 차갑지 않아 조금 실망했지만 소바를 먹기 시작하며 마음이 바뀌었다.

소바면은 차갑고 살짝 찰져서 따뜻한 국물에 살짝 담궜다 먹으니 국물이 잘 베어 감칠맛이 살아났다. 오리고기는 소바국물과 찰떡궁합이었고, 나중에 소바유를 부어먹으니 간이 딱 적당해져서 마음 놓고 국물을 마실 수 있었다.

오리고기가 우러난 국물은 중독성이 매우 심해서 배가 부를 때까지 끊임없이 마셨다.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처음에는 왜 냉소바인데 국물이 따뜻한가 의아했지만, 국물이 따뜻하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깊은 감칠맛을 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날이 춥든 덥든 야부소바는 맛있다. 역시 야부소바였다.

Tip. 간다의 본점보다 우에노의 분점이 구글 별점이 더 높다. 청출어람이 따로 없다. 우에노에 들른다면 꼭 방문해야 할 식당이다.

A 6 Chome-9-16 Ueno, 台東区 Taitō-ku, Tōkyō-to 110-0005, 일본

T +81 3-3831-4728






Kathie

식도락과 예술, 도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공간 그 자체에 대한 글을 씁니다. 도시의 자연과 로컬문화를 사랑하므로, 여행에세이보다는 도시에세이를 지향합니다. 여행에세이 <나고야 미술여행>을 썼고, 도시에세이 <나는 아직 도쿄를 모른다>를 연재중입니다. 다루었으면 하는 소재나 주제가 있으면 댓글 혹은 이메일(amy_423@naver.com)로 의견 보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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