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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Oct 29. 2018

카야바 커피의 젠트리피케이션

우에노

카야바 커피의 겨울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찾아간 우에노 사쿠라기의 카야바 커피. 우에노에서 야나카로 접어드는 초입에 있는 오래된 카페이다. 무려 1938년에 개업한 카페이니 올해로 딱 80년이 되었다.

Kayaba Coffee, January 2018
80년의 역사를 간직한 카야바 커피
Kayaba Coffee, April 2018

낡은 목조 건물, 복고풍의 계란색 간판,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바닥이 찢어진 의자, 고리를 돌여 잠그는 20세기 중반 스타일의 창문 등 레트로함이 물씬 풍겼다.

Yanaka, January 2018

1900년대 중반의 느낌이 아직 남아있는 야나카 거리와 딱 맞는 분위기의 카페였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창가에 앉으니 햇볕이 잘들어 얼굴이 따가울 정도였다. 일광욕 하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1,000엔의 행복, 런치세트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1,000엔 런치세트였다.

Kayaba Coffee, January 2018

1,000엔을 냈더니 에그샌드위치(이하 에그샌드)와 스프, 약간의 샐러드 그리고 커피가 나온다. 커피의 원두는 푸글렌이었다. 어쩐지 향이 좋고 독특하다 했다.

기대를 거의 하지 않고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감동적일 정도였다. 사이드로 나온 상추 샐러드와 콘소메 스프는 동서양의 조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샐러드의 재료인 상추는 다분히 동양적인데 곁들인 드레싱은 양식집 소스 같았고, 스프의 본질인 콘소메는 서양의 맛이었음에도 흰 찻잔에 담긴 모양새는 미소 된장국 같았다.

에그샌드는 계란 특유의 비릿함이 전혀 없고 고소하며 부드러웠다. 그 이유는 와사비 때문인 것 같았다. 그 어디에도 초록색 소스는 보이지 않았지만 한 입 베어물 때마다 와사비 향이 맴돌았다.

허니버터토스트와 에그샌드

석 달 후, 계절은 바뀌어 봄이 되었다. 은희에게 카야바 커피를 소개했다.

카야바 커피의 주력메뉴, 에그샌드

에그샌드의 맛은 여전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1,000엔 세트가 사라져서 조금 더 비싸게 먹어야 했다.

카야바 커피의 긴 줄

그리고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줄이 길었다. 안에 들어간 모든 사람이 나올 때까지 30분 정도 기다렸다. 마음껏 휴식을 취하던 여유있던 공간이 관광지처럼 변했다.

카야바 커피의 허니 버터 토스트. 맛있긴 하지만 에그샌드를 먹는 편이 낫다. 최고의 토스트는 쿠라시키의 <엘 그라코>에 있다
시즌음료인 체리블러썸모히또. 칵테일은 전문 바에서 마시는 편이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대기시간과 다소 높아진 가격을 상쇄할만한 에그샌드가 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칵테일은 좀 아쉬웠지만 은희가 주문한 따뜻한 푸글렌 커피는 토스트의 단맛을 잡아줬다.

카야바 커피에 찾아온 봄

다음날에도 카야바 커피에 갔다. 에그샌드 외에 밥 메뉴도 있었던 것 같아서 다른 음식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Kayaba Coffee, Tokyo, May 2018
2층은 다다미방이었다

처음으로 1층이 아닌 2층 다다미방으로 안내되었다. 오랜만의 책상다리는 불편했지만 80년된 건물의 역사가 묻어나는 정겹고 고풍스러운 공간이었다. 할머니의 어릴적 다락방을 발견한 것처럼.

빵보다 밥이 먹고 싶어서 선택한 하야시 라이스는 다소 평범했다(강남역의 코코이찌방야가 더 맛있다)

이날은 혼자였기 때문에 식사를 마치고선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다. 여행지에선 아침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게 나의 기쁨이었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도 여유 있는 분위기와 향기로운 커피, 따뜻한 햇살 때문에 글이 평소보다 더 잘 써지는 듯했다. 대단한 행복은 아니지만, ‘이 맛에 여행을 간다’라 할만큼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나 이 작지만 소소한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점원이 다가와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아직도 대기가 많은지, 줄서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제 그만 자리를 비켜달라는 얘기였다.

줄서는 방법이 안내된 가게 앞 표지판
• 젠트리피케이션
본래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낙후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와 지역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불과 석달만에 카야바 커피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왔다. 여행자이자 뜨내기에 불과한 내가 느끼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면, 긴 세월 대대로 이곳에 살아온 주민들은 아침부터 늘어선 줄을 보며 한숨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동네 주민들과 수다를 떨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던 동네 카페가 이름 모를 외지인들로 가득하게 되었다고. 카야바 커피의 레트로한 매력은 조용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빛을 발했다. 카페의 여유있고 한적한 분위기를 사랑하던 손님들은 사람이 많고 북적이게 된 카페를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나서게 될 것이다.

카페에 봄이 찾아왔지만

대중적 인기가 많아지면 외부인이 많아지고, 원주민은 쫓겨난다. 작고 독특한 가게는 규모가 커지는 대신에 고유성을 잃고 평범해진다. 이것은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 카페뿐만 아니라 모든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는 도시가 직면하는 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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