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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Feb 12. 2018

나츠메 소세키의 동네, 카구라자카를 걷다

카구라자카

2017년 5월 4일 목요일,

신주쿠구 카구라자카


Kagurazaka, Tokyo, May 2017

이다바시​에서 간다강을 건넜다. 어느덧 카구라자카의 입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Kagurazaka, Tokyo, May 2017

강을 하나 건넜을 뿐인데, 주오구에서 신주쿠구로 건너왔다.

Kagurazaka, Tokyo, May 2017

‘이치가야후나가와라마치’라는 꽤 긴 이름의 동네였다. 카구라자카 언덕길로 접어드는 오르막 길이 시작됐다.

Kagurazaka, Tokyo, May 2017

카구라자카는 에도시대에는 무기 저장소로, 다이쇼시대에는 게이샤가 있는 요정 밀집 지역이었다고 한다.

나츠메 소세키가 도쿄에서 집필할 때 이곳에서 글을 썼다고 하는데, 그가 살던 시절엔 요정이 많았을 것 같다.

예전에 나츠메 소세키의 <그 후>를 읽을 때 가구라자카의 묘사가 유독 눈에 띄었는데, 그곳에 살던 경험이 반영된 것이었나보다. 그가 묘사하는 카구라자카는 조용한 동네이지만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곳이었다.


가구라자카에 이르자, 좌우로 이층집이 늘어서 있는 쥐죽은 듯이 조용한 길이 좁고 길게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 나츠메 소세키, <그 후> 126p


가구라자카에 이르자 어떤 가게에서 커다란 축음기를 틀어놓고 있었다. - 나츠메 소세키, <그 후> 178p


소세키가 살던 때에도 카구라자카의 좁은 언덕길은 여전했던 것 같다.

Kagurazaka, Tokyo, May 2017

지금의 카구라자카는 일본 전통 문화와 프랑스에서 유입된 서양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한쪽엔 소바집과 가이세키 식당이 있고, 다른 한편엔 베이커리가 있었다.

요정이 하나 둘씩 사라지면서 그 자리엔 프랑스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프랑스 레스토랑, 베이커리, 학교 등이 거리를 채우며 도쿄의 서래마을 같은 곳이 되었다.

Kagurazaka, Tokyo, May 2017

전통 문화, 프랑스 문화와 더불어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 일본인의 생활상 또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뒤쪽엔 현지 주민들이 장을 보는 작은 식료품점이나 정육점, 도시락을 파는 초밥집이 있었다. 동네 마실 나온 주민들과 미용실에서 머리 하는 사람들도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Kagurazaka, Tokyo, May 2017

이곳이 낭만이 넘치는 동네라는건, 우시고메 카구라자카역과 카구라자카역을 잇는 거리에서 깨달았다. 거리 어딘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클래식이나 재즈음악이 흘러나왔다. 가스등 같은 낭만이 있는 오렌지빛 전등은 길을 밝히고, 잔잔한 경음악은 마음에 여유를 선물했다. 소세키의 소설 속, 카구라자카의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떠올랐다. 기막힌 우연이다.

Kagurazaka, Tokyo, May 2017

이곳 주민들의 저녁 시간은 행복하겠구나, 생각했다.

Kagurazaka, Tokyo, May 2017


가구라자카를 내려가서 되는대로 눈에 띈 첫 번째 전차를 탔다. 그날 밤은 아카사카의 어느 요릿집에서 보냈다. - 나츠메 소세키, <그 후> 232p


단 일주일이라도 이곳 주민처럼 지내보고 싶다. 또 도쿄에 가게 된다면 다음에는 카구라자카에 숙소를 잡고, 아침엔 골목을 산책하며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낮엔 소세키처럼 카구라자카에서 아무 열차나 타고 낯선 동네에 가보고, 저녁엔 거리의 음악을 들으며 정처 없이 걸어보고 싶다.

Kagurazaka, Tokyo, May 2017

카구라자카역이 카구라자카 산책의 종착지였는데, 역 바로 옆에서 눈에 띄는 가게를 발견했다. 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카모메 북스’라는 서점이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이 떠오르는 이름이었다. 문득 카모메가 무엇인지 찾아보니 갈매기라는 뜻이었다.

서점 안에는 카페도 있었다. 카모메 북스를 지나치면서 왠지 모를 아쉬움이 컸고, 결국 다음날도, 1년 후에도 방문하게 되었다.

Kagurazaka Station, Tokyo, May 2017


강렬한 푸른색이 인상적인 카구라자카역. ‘카구라자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도자이선의 파란색이 정말 잘 어울렸다.

파랗고 파란 카구라자카. 나카메구로도, 다이칸야마도 매력있고 인기많은 동네이지만, 내가 도쿄에서 가장 사랑하는 동네는 카구라자카이다.






Kathie

식도락과 예술, 도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공간 그 자체에 대한 글을 씁니다. 도시의 자연과 로컬문화를 사랑하므로, 여행에세이보다는 도시에세이를 지향합니다. 여행에세이 <나고야 미술여행>을 썼고, 도시에세이 <나는 아직 도쿄를 모른다>를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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