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티하이커 Dec 19. 2018

기내식의 유혹

하늘 위의 달콤한 시간

셔틀 트레인을 타야하는 100번대의 게이트, 2018년 11월, 에어서울

연착이 많고 셔틀 트레인을 타야 하는 수고가 들지만, 가까운 일본이나 홍콩에 갈 때는 10~15만원 정도 저렴한 저가항공(이하 LCC)을 타게 된다. 생각해보면 그 10~15만원의 차이는 브랜드, 모니터 유무, 좌석 간격, 연착 여부, 게이트가 얼마나 가까운지, 마지막으로 기내식 때문이다.

간혹 모니터, 좌석 간격에 대해서는 대형 항공사 못지 않은 LCC가 있긴 하다.

장거리 항공기 못지 않은 개인 모니터

수익성이 떨어지는 아시아나의 마이너한 일본 노선을 분리하여 만든 항공사가 에어서울인데, 그 때 사용하던 기체를 그대로 받아온건지 LCC답지 않은 좌석 간격과 커다란 개인 모니터가 돋보였다. 분명 에어 서울은 단거리 노선에서 이 분야 1위 제주항공을 위협하는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무료 기내식이 없는건 마찬가지였다. LCC에서 유일하게 무료 기내식을 제공하던 진에어마저 2017년부터 일부 중거리 노선을 제외하고 유료로 전환해버렸다.


사실 기내식이 뭐 그리 중요한가. 어떤 이는 세상의 먹을 것 중에 기내식이 가장 싫다며, 좁은 공간에서 사육당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기내식이 없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생애 첫 LCC였던 진에어는 당시 주먹밥, 바나나, 머핀 같은 간단한 기내식을 제공해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도쿄에 갈 때 제주항공을 타게 되면서부터 기내식의 빈자리를 느꼈다.

사실 그 전에 제주도를 다녀올 때 탔던 LCC는 거리가 짧아서 괜찮았다. 그런데 도쿄까지는 2시간 반에서 세 시간 사이의 애매한 비행시간이다. 출발신호를 빨리 받지 못하고, 나리타에 도착해서도 게이트까지 한참을 기어가는 LCC를 타면 실제로 비행기에 머무는 시간은 세 시간 정도 된다.

일본은 가깝다는 일반적인 통념과, 실제로는 시간이 꽤 걸리는 현실 사이의 인지부조화가 기내식의 부재를 일깨운다. 괜히 배가 고파지고 입이 심심해진다. 처음에 LCC에서 음식을 돈 받고 판다는 걸 알았을 땐 ‘저런걸 누가 사먹지’ 생각했지만,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엔 라면 냄새가 진동했다.

하늘에서 먹은 짜파게티, 2018년 1월, 제주항공

결국 냄새의 유혹 때문에 시중가보다 비싼 값에 짜파게티를 주문해버렸다. 평소보다 비싸서인지, 지상에서 먹은 짜파게티보다 맛있었다. 심지어 평상시에는 짜파게티를 잘 먹지도 않는다. 근데 비행기만 타면 왠지 모든게 다 맛있어 보인다. 참 이상하다.

재치있는 치맥세트, 2018년 5월, 제주항공
비행기에서 마신 화이트 와인, 2018년 11월, 에어서울

뭐든 처음이 어렵지, 한번 유료 기내식을 개시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거리낌없이 주문했다. 특히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환전도 되지 않는 동전을 처리한다는 명목 하에 200엔 하는 프링글스를 사다먹은 적이 허다했다. 비행기에서 판매하는 음식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건강에 좋은건 손에 꼽기 힘들고, 대다수가 나트륨, 설탕 가득한 군것질 거리들 뿐이다. 기내식은 다이어트의 적이다. 심지어 근래에는 기내 면세점마저 날 유혹하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비행기에 탈 때 모든 일정 중 가장 치명적인 유혹이 시작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