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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Dec 30. 2018

이름난 곳에 가지 않아도

비싸다고 더 맛있는건 아니다

Sukiyaki Kimura, Kyoto, February 2017

교토로 여행 갔을 때였다. 엄마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티비에서 봤던 스키야키를 드시고 싶어하셨다. 마침 원래 저녁 식사를 하려던 곳이 폐점되고 없길래 카와라마치 근처에서 스키야키 식당을 물색했다. 구글맵에 ‘스키야키 키무라’라는 곳이 있었다. 당시 구글맵 평점은 4점 이상이었기에 카와라마치 아케이드 안으로 향했다.

Sukiyaki Kimura, Kyoto, February 2017

그곳은 각종 티비와 잡지에 나온 유명한 식당이었다. 흑백 사진과 신문 스크랩을 보니 역사도 깊어보였다. 대욕탕을 식당으로 개조한 것 같았다.

Sukiyaki Kimura, Kyoto, February 2017

사진까지 포함해 스키야키를 먹는 방법이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었지만 일본어 한자 문맹인 나에겐 무용지물이었다.

Sukiyaki Kimura, Kyoto, February 2017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윗층으로 올라갔다. 다다미방이었는데 우리가 자리를 잡으니 딱 만석이 되었다.

고기는 1인분만큼만 넣어 먼저 끓였다

냄비가 작아서인지, 아니면 원래 조금씩 나누어 조리하는건지 모든걸 1인분 분량만 넣어 끓였다. 첫 번째 냄비는 다행히 직원분이 만들어 줬다. 매뉴얼을 읽을 수 없으니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을 눈으로 익힐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냄비가 완성된 후 직원은 자리를 떠났다. 두 번째 냄비부터 우리가 만들어 먹었는데 생각보다 국물이 적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고기가 약간 질겼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종잇장처럼 얇은 샤브샤브용 소고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Sukiyaki Kimura, Kyoto, February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비싼 편이었다. 둘이서 먹는데 5-6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음식의 양념은 괜찮았지만 고기가 질겼다. 그리고 밥을 추가하려면 여기에 또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돼서 가성비가 낮았다. 특히 엥겔지수가 낮은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었다. 전형적인 관광객용 바가지 식당이었다.

Gihey, Narita, November 2018

그로부터 1년 반을 훌쩍 넘긴 후에 여행지에서 스키야키를 다시 만났다. 이번엔 도쿄에서였다.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는 스카이라이너에서, 우에노, 2018년

벌써 다섯 번째 도쿄였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사이타마에 가서 축구경기를 봤는데, 경기장에서 딱히 먹고 싶은게 없어서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다. 하루종일 먹은거라고는 아침에 먹은 에그샌드와 커피 한잔, 저녁에 먹은 두부 한 모가 전부였다. 다음날 아침에도 너무 피곤해서 빈둥대느라 굶은채로 서둘러 공항에 도착했다.

Narita Airport Terminal 1, November 2018

너무 배가 고팠는데, 다행히 출국수속을 받기 직전에 터미널 푸드코트에서 일식집을 발견했다.

Gihey, Narita, November 2018

다양한 일식 메뉴들이 있었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은건 1인용 스키야키가 담긴 작은 냄비 사진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종종 있는 1인용 샤브샤브와 비슷해 보였다. 내가 스키야키에 대해 가진 기억이라고는 교토에서 비싼 돈 주고 먹은 ‘빛 좋은 개살구’ 뿐이었다. 그래도 왠지 이 곳의 스키야키는 마음에 들 것 같았다. 이륙시간이 그다지 여유있지 않아 밥 먹을 시간은 20분 정도밖에 없었지만, 주문하지 10분도 되지 않아 스키야키 냄비와 진한 재첩 미소된장국이 함께 나왔다.

마음에 쏙 들었던 나리타공항의 스키야키

먼저 고기를 한 점 먹어봤다. 우리나라 샤브샤브의 얇은 고기보다는 두꺼웠지만, 소불고기에 뒤지지 않을만큼 육질이 야들야들했다. 교토에서 먹었던 스키야키 같은 큰 대파와 양파는 없었지만, 혼자 먹기에 충분히 포만감이 드는 양이었다. 화룡정점은 살짝 쫄은 국물이었다. 감칠맛이 도드라지는게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도 맞을 듯했다.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밥공기에서 절반 정도를 떠서 국물에 말아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맛에 대한 만족감은 교토에서 먹었던 스키야키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가격은 절반, 맛은 두 배 이상이었다.

이름난 곳에 가지 않아도, 공항에서 급하게 먹더라도, 충분히 맛있는 한끼를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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