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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Jan 07. 2020

도쿄에서 만난 베르메르

우에노 모리 미술관 베르메르전

도쿄도 미술관에서 열리는 뭉크 전과 국립 서양 미술관의 루벤스전을 보러 우에노 공원에 갔는데, 우연히 공원 안의 우에노 모리 미술관에서 베르메르 전이 진행 중이라는 걸 알게 됐다. 운 좋게 얻어걸린 셈이었다.


그해 11월에 네덜란드에 가려고 했다가​ 휴가를 쓰지 못하게 되어 포기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도쿄에서 베르메르를 만나게 됐다는 게 운명 같았다. 예정대로 그때 암스테르담에 갔다면 베르메르의 “Milkmaid”를 보지 못할 뻔했다. 마치 ‘신포도’ 같은 자기 위안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라도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의 많은 그림들을 봐서 위안이 됐다.

베르메르가 남긴 작품의 수가 많은 편이 아닌 데다가, 네덜란드나 미국에 가지 않는 이상 실제 작품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그래서 테이트 모던의 피카소전처럼 시간 예약제를 운영했다. 금요일이라 다행히 야간 개장했기 때문에, 가장 늦은 저녁 시간에, 낮보다는 여유 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에서 여러 작품을 대여해왔기 때문에, 베르메르뿐만 아니라 다른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들도 꽤 전시되어 있다. 이건, 1년 뒤 헤이그 미술관에서 건너온 반 고흐 전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일본의 특별전들처럼 사진은 절대 찍을 수 없었다. 주변의 국립 서양 미술관이나 도쿄도 미술관에 비해 입장료가 월등히 비쌌으나, 오디오 가이드가 무료였다. 한국어는 없었고 영어만 있었으나, 이듬해 같은 미술관에서 열린 반 고흐전을 생각하면 영어 오디오 가이드라도 있는 게 감지덕지였다.

영어 도록도 있었다. 그러나 영어판이 일본어판보다 가격이 2배나 비쌌다. 대체 왜 가격이 다른지 의문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고, 유명한 그림은 대부분 작았기 때문에 큰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아마 도쿄에 도착한 첫날 저녁 늦게 방문한 두 번째 미술관이라 지쳐서, 그림에 감동을 느낄만한 기력이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미술관 투어는 그 어떤 여행 일정보다 체력 소모가 상당히 크다는 걸 항상 느낀다.

노란 옷을 입은 기타를 치는 여인의 그림은 다음 행선지인 오사카 시립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도쿄에서 2월 3일까지 전시되니, 약 2주 후에 오사카에 그림이 걸리는 셈이었다.

우메다역에서 발견한 베르메르전 홍보 / 2019년 3월

이듬해 오사카에 갔을 때, 우메다역에서 베르메르의 그림을 재회했다. 전시회 요금이 비싸서 오사카에서 또 보러 가지는 못했지만, 몇 달만에 홍보물로 베르메르의 그림을 만나니 반가웠다.

네덜란드에 가지 못한 나에게, 베르메르의 그림이 도쿄로 직접 찾아오더니 다음 해엔 오사카에서 우연히 조우했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도 우연처럼, 그때는 만나지 못한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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