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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멋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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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Mar 25. 2019

얻은 것과 잃은 것

한남동에서

2018 12 14 금요일


지난 상반기에 굉장히 이국적인 바를 발견했다. 위대한 개츠비에 나올 법한 웅장하고 화려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자리값에 해당하는 커버 차지가 없었고, 클래식 칵테일이 비싼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동안 꽤 자주 갔다. 나의 초여름부터 한여름을 책임졌던 핫플레이스였다.

라모스 진피즈, 2018년 6월

이 가게에서 가장 특별했던 건 라모스 진 피즈였다. 위로 올라온 거품이 5cm는 되어 보였다. 떠먹으라고 스푼까지 줬는데, 떠먹고 있으면 생크림을 실하게 얹은 레몬 머랭 케이크를 먹는 듯했다. 물론 살은 찌겠지만, 폭신한 질감과 달달함 덕에 행복한 포만감을 주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10분 넘게 쉐이킹을 해야 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동화까지 구현돼 있었다. 대만에서 파는 버블티 기계를 라모스 피즈 전용 쉐이킹 기계로 변형한 것이었다. 아무튼 처음 방문했을 때는 화려한 외관과 창의적인 칵테일, 외국인 바텐더들이 상주하는 이국적인 분위기 등으로 한창 폭 빠졌었다.

멘보샤, 2018년 7월

한 달이 지났더니 안주 메뉴가 생겼다. 전문 중식당은 아니었지만 표면은 바삭하고, 안엔 육즙이 가득해 꽤 맛있었다.

탄산이 가득한 샴페인 칵테일, 2018년 7월

함께 마셨던 샴페인 칵테일은 탄산 감이 가득하고 산미가 도드라져 다소 느끼할 수 있는 멘보샤의 기름기를 잡아줬다.

한 번 싸늘한 감정을 느꼈던 적은 네그로니 아이스크림 때문이었다. 신메뉴였던 네그로니 아이스크림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렸는데, 나한테 허락을 받지 않고 사진을 캡처하여 무단 사용했는지 같은 사진이 공식 인스타에 올라온 걸 발견했다. 내가 DM으로 이건 내 사진이 아니냐 물어봤더니 그제야 출처를 명기했다. 내가 되묻지 않았다면 그대로 무단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에 좀 기분이 나빴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계절이 겨울로 바뀔 때까지 방문하지 않았다. 한남동과 딱히 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와 함께 이곳을 자주 다니던 친구가, 나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떠서 오랜만에 그곳에 잠깐 들렀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친구의 표정은 조금 언짢아 보였다. 이유를 물으니, 내가 친구의 위치를 묻기 위해 잠깐 전화를 걸었는데 친구가 전화를 받자마자 여기서는 통화를 하면 안 된다며 무안을 줬다는 것이었다. 긴 통화를 한 것도 아니고 위치 확인 때문에 잠깐 전화를 받은 것으로 그렇게 무안을 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럼 추운데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고 돌아왔어야 하는 걸까. 친구는 기분이 상해 주문한 안주를 다 먹지도 못하고 나왔다고 했다.

그 후 나도 송년회가 있어서 오랜만에 그곳을 방문했다. 반년 사이에 가게는 더 번창했다. 이른 시간에도 손님이 거의 가득 찼으며, 추운 날씨에도 회전이 잘 됐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논알코올 칵테일의 퀄리티도 여전히 훌륭했다. 술을 못 마시는 친구가 주문한 어느 논알코올 칵테일은 술이 들었던 다른 칵테일을 압도하는 맛이었다. 분명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2018년 12월의 샴페인 칵테일

그러나 반년 전의 훌륭한 조합이었던 샴페인 칵테일과 멘보샤는 실망을 안겼다. 사진을 비교해도 드러나지만, 샴페인 칵테일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기포가 다 죽어 있었다. 맹맹한 사과주스 같았다.

2018년 12월의 멘보샤

실망감은 멘보샤에서 정점을 찍었다. 저녁을 먹지 않고 와서 다들 배가 고팠는데, 멘보샤를 주문하자 셰프님이 안 계시다고 했다. 그럼 언제 오시냐고 묻자, 아무 연락 없이 안 오시는 중이라 기약이 없다고 얘기했다. 전혀 미안해하는 느낌은 없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가 나가야 할 듯한 분위기였지만 두 달 전부터 여기서 먹기로 약속했었고, 임신한 친구가 매우 기대했기 때문에 그냥 칵테일이나 마시자 하며 참았다.

다행히 조금 시간이 지나자 셰프님이 복귀했는지 멘보샤를 주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맛이 변했다. 예전에는 직접 만든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린 느낌이었다. 몇 달 전에는 같은 멘보샤를 감탄하며 먹었던 친구가 이번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들 조용히 멘보샤 한 조각씩 먹었다.

예전 같았으면 베이컨칩도 주문하고 더 머물렀겠지만, 그냥 일반적인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친구가 물었다.

“멘보샤는 원래 만들어져 있는 걸 돌리는 거겠지?”
“예전엔 맛있었는데 좀 짜더라.”

내가 생각해도 예전의 그 맛은 아니었다. 멘보샤뿐이 아니었다. 명성은 얻었지만 초심은 잃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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