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멋진 하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티하이커 Dec 26. 2019

면세품의 함정

나리타공항 제1터미널

2019 12 25 수요일


엄마를 모시고 일본에 가면 “퍼펙트 휩” 시리즈를 사게 된다. 혼자 갈 때도 종종 사다 달라고 하실 때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드러그 스토어에서 처방 없이 살 수 있으니 약이라고 하긴 뭐한) 위장약인 카베진을 더 선호하신다. 카베진은 양배추를 원료로 한 알약으로, 양배추가 위에 좋기 때문에 위장약으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이번에도 엄마 선물로 드리려 카베진을 사려고 했으나, 내가 묵는 숙소 주변엔 드러그 스토어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사카의 난바처럼 마치 명동 같은 거리라면 관광객을 노린 드러그 스토어들이 많았을 텐데 내가 머무른 곳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결국 카베진을 사는 과제는 출국 직전까지 미뤄졌다. 공항에 도착하니 편의점의 개수만큼 드러그 스토어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왕 공항에 왔는데 면세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파파고를 켜고 점원에게 “면세 구역에도 약국이 있나요?”라고 물어보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결국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 구역에 들어섰고, 탑승 게이트와 동떨어진 곳에 있는 드러그 스토어까지 원정을 갔다. 가장 큰 카베진이 2,012엔이었다. 계산을 하면서도 혹시나 싶어서 면세가 된 가격인지를 재차 물어봤다.

나는 가장 큰 할인이자 절약은 절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가령 금융상품에서도, 투자 수익률을 올리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공제를 받아 절세를 하는 편이 보다 안전하고 실제 유효 수익률도 상승한다고 종교처럼 믿고 있었다.

그런 내 신념을 박살 낸 게 불과 한 달 반전, 엄마와 후쿠오카에 갔을 때 시내의 드러그 스토어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었다. 당시 제품의 모양을 기억하기 위해 찍어 놓은 사진이었는데, 가격표도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면세가 된 것도 아닌데, 세금이 포함된 가격이 1,958엔이었다. 어마어마한 차이는 아니지만 굳이 면세점에서 살 이유도 없었다.

10%를 아끼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가 자체가 높게 측정되어 있었으니 도로아미타불이었다. “면세품이 무조건 저렴하다.”는건 고정관념일 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얻은 것과 잃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