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와 오키나
4월에 오사카를 방문하자마자 먹은 첫 식사는 기타구 남쪽 니시텐마의 나니와 오키나였다.
나카노시마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기 전, 화방이 모여있는 골목에 있었다. 덕분에 우리나라 인사동이 생각나는 화방 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금요일 열두 시 반이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긴 줄이 없었다. 간판이 눈에 띄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긴 줄이 없다면 못 찾고 그냥 지나칠 위험이 있다.
가게 밖에는 줄이 없었고, 안으로 들어가니 빈자리는 없었으나 5분도 채 기다리지 않아 식사를 마친 손님이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4월 19일에 방문했기 때문에 아직 골든위크까지는 한참 남아있었지만, 부지런한 사장님은 언제 영업하고 언제 쉬는지를 가게 벽에 붙여놓으셨다.
금방 빈자리로 안내를 받았고 메뉴판을 슬쩍 보았다. 이 가게가 특별한 소바집인 이유는 메밀가루만 사용한 순도 100%의 쥬와리 소바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엔을 추가하면 몸에 좋고 먹어도 살도 안 찔 듯한 (죄책감 0%의) 식사를 할 수 있다. 단, 하루에 스무 그릇 한정이다. 다행히 아직 스무 그릇이 다 팔리지 않았는지 주문이 가능한 상태였다.
비릴까 봐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청어가 들어간 니싱소바에 도전했다. 온소바는 니싱소바, 냉소바는 히야시 니싱소바인데 날이 더워서 히야시 니싱소바를 골랐다.
그 외에 야키 미소라는 사이드 메뉴와 주류로 일본 소주 한 잔을 추가 주문했다.
야키 미소는 구운 된장 요리이다. 일본주와 잘 어울린다고 해서 골랐다.
메뉴에 있는 사진으로는 웬 나무주걱이 하나 있어서 이게 뭔가 했는데, 실제로 주문한 음식을 받아보니 정말 나무주걱 하나가 나왔다. 어떻게 먹는 거지? 젓가락으로 긁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숟가락에 붙은 밥을 긁어먹듯 먹었다.
맛은 어땠을까?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차조기(일본어로는 시소)가 들어가 있었다. 칵테일에 가니쉬로 들어간 시소 칵테일이나, 초밥에 소량 들어간 차조기는 먹을만한데 일본 된장과 함께 잔뜩 뭉쳐지니 향이 지나치게 강했다. 310엔이라 비싼 메뉴는 아니었지만, 차조기 마니아가 아니라면 차라리 다른 사이드 메뉴를 먹는 편이 낫겠다.
그럼 야키 미소랑 잘 어울린다는 일본주의 상황은 어떨까?
난 소주를 잘 못 마신다. 특유의 알코올램프 향을 역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대중적 소주는 희석식 증류주고, 여기서 파는 일본 소주는 일반 증류주이니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서 도전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고구마 성분 인공 주정으로 만든 희석식 증류주보다 향은 좀 나은 편이었지만, 소주는 소주였다. 게다가 한 잔이 어찌나 양이 많은지, 왜 가격이 620엔인지 알 수 있었다.
사장님은 소바 삶은 물, 이를테면 숭늉 같은 소바유를 소주에 섞어 마시기를 권했다. 위의 사진에 있는 까만 주전자가 소바유다. 다행히 소바유를 부어 마시니 소주 특유의 향이 가라앉아 먹을만해졌다. 그런데 안 그래도 소주의 양이 많은데, 소바유까지 섞으니 두 배로 늘어나 배가 불렀다. 이 소주 녀석은 물타기를 해도 취하는 것 같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역시 메인인 히야시 니싱소바였다. 앞에서 언급했듯 밀가루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도 100% 메밀 소바인 쥬와리 소바 덕분이었다. 메밀 함량이 100%라 국수가 뚝뚝 끊어진다. 점성이나 찰기가 없어서 쫄깃한 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취향이 안 맞을 수 있겠지만, 쫄깃한 면은 한국에서도 많이 먹을 수 있으니 이 가게를 방문하면 꼭 쥬와리 소바를 먹어보길 추천한다.
온면이 아닌, 차가운 면인 히야시 소바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음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냉소바는 마치 냉면처럼, 얼음이 동동 뜬 국물에서 헤엄치는 소바가 나오지만 일본의 차가운 소바는 미지근한 면에 그리 차갑지 않은 쯔유를 부어 먹는다.
맛있는 소바였다. 청어도 전혀 비리지 않았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조미된 청어의 양념이 달았다는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일본 음식이 좀 달긴 한 것 같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먹었던 소바 중 가장 으뜸이었던 곳은 도쿄 우에노의 야부소바이지만, 메밀 함량 100% 쥬와리 소바의 존재 때문에 나니와 오키나도 추천한다. 혹시 1일 판매 한정량인 스무 그릇이 다 팔려서 쥬와리 소바를 못 먹게 된다 하더라도, 일반 면인 니하치 소바도 메밀 함량 80%에 육박하니 믿을만하다.
다음에 또 오사카를 방문하게 된다면, 이곳에서 오리고기가 들어간 쥬와리 소바에 도전해보고 싶다. 어쩌면 바 베소에 이은 두 번째 오사카 단골가게가 될지도 모르겠다.
오사카의 가게라 그런지, 사장님은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손님들에게 모두 오사카 사투리로 고맙다는 뜻인 “오오키니”라고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오오키니” 뿐만 아니라 “오오키니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라고 사투리와 표준어를 섞어서 인사하는 게 기억에 남았다.
Tip. 카드 결제는 안되고 현금만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