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만큼 양이 많은 파리의 외식 음식
파리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 2년 전처럼 16구의 민박집에 묵었다. 매일 프랑스식 아침식사를 만들어 주시는데, 한 달 정도 장기 투숙하시는 어머님과 나는 매일 아침을 챙겨 먹었다. 이번 여행 일정의 절반 정도 지났을 때쯤, 파리 외식 물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어머님은 파리가 서울보다 외식 물가가 훨씬 비싸고, 음식 양은 엄청 많다고 하셨다. 처음엔 그 말씀에 공감을 못했다. 서울도 물가가 비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나도 그 점에 대해 수긍하게 되었다. 파리의 물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건 화폐 단위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막연히 10유로, 12유로라고 하면 별 감흥이 없지만 원화로 환산하면 13,000원, 15,600원 정도이다. 아무리 물가가 많이 올랐다 해도, 아직 10,000원 미만의 음식이 꽤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여긴 7유로 이하의 음식을 찾기 힘들다.
심지어 미술관인 프티 팔레의 카페에서 파는 오렌지 주스는 5유로로, 거의 식사에 준하는 가격이었다. 그렇다고 엄청 고급스러운 주스도 아니고 냉장고에서 주스병을 꺼내서 종이컵에 담아주는 원가 마진이 엄청 커 보이는 음료였다.
파리는 외식물가가 전반적으로 높은 대신에 음식 양도 많았다. 뉴욕의 음식도 양이 꽤 많아 배가 터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파리도 그에 못지않았다. 아침에 어머님과 파리 외식의 음식 양에 대해 얘기하자마자, 바로 그날 낮에 실제로 그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오페라 가르니에가 지척에 있는 파리 2구의 해리스 뉴욕 바를 방문했다. 이곳은 헤밍웨이 등 명사들이 방문한 역사 깊은 바로, 블러디 메리, 사이드카, 화이트 레이디, 불 바디에 등의 클래식 칵테일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다. 파리 대다수의 바가 저녁 6시나 7시에 오픈하는데, 이곳은 정오에 문을 열어 낮술이 가능하다는 메리트가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매니저님이 점심도 먹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점심메뉴를 받았고, 그중에 멕시코 음식인 칠리 콘카네를 주문했다.
음식은 맛있었다. 칠리 콘카네에 넣어 먹을 수 있게 잘게 썰은 모차렐라 치즈도 따로 주셨고, 우리나라의 ‘밥’에 해당하는 빵도 곁들여 나왔다. 민박집 사장님 말씀이, 우리가 무언가를 먹을 때 밥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프랑스 사람들은 항상 빵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랬다. 바게트는 아니지만 구운 식빵 두 점이 나왔다. 칠리 콘카네를 식빵에 올려먹으니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양이 너무 많았다. 일반적인 2인분 정도 되지 않나 싶었다. 술을 석 잔을 마시는 동안 부지런히 먹었는데도 아직 절반이 남아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절반을 남겨서 맛이 없어서 남겼는 줄 오해하실까 봐 마음이 불편했다.
칠리 콘카네는 15.5유로로, 당시 환율을 적용하며 우리나라 돈으로 21,000원에 해당하는 값이었는데 객관적으로 비싼 축에 속한다. 2인분에 해당하는 양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긴 한다. 차라리 양을 줄이고, 가격이 좀 저렴해지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복귀한 후 민박 사장님이 추천하신 인근의 태국 식당에 갔다. ‘빅 부다’라는 식당이었다. 사장님은 고기가 없는 팍 토푸, 소고기가 잔뜩 들은 카파오를 추천하셨지만 나는 익숙한 메뉴인 팟타이로 주문했다.
팟타이는 10유로였다. 구글맵 리뷰에서도 이 가게의 음식은 대부분 10유로라며 싸다고 칭찬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한화 13,000원은 싸다고 볼순 없는 가격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파리 외식 물가를 생각하면 10유로는 대단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나무 그릇을 가득 채우는 팟타이의 푸짐한 양을 생각하면, 10유로가 싸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단, 당신이 대식가라는 전제가 붙는다. 태국인이 직접 조리하는 주방답게, 아주 맛있는 팟타이였지만 아무리 기를 써봐도 3분의 1은 남길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저걸 다 비울 수 있는 걸까 생각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7-8유로 정도 받고 우리나라의 1인분 정도 양을 조절하면 매일 가서 먹을 텐데 생각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싸고 양이 적은 것보단 비싸고 양이 많은 게 낫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정말 간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