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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Jul 10. 2019

도쿄에서 만난 빈

롯폰기 국립 신미술관 / 2019년 6월

서울아트가이드 6월호

일본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150주년을 맞아, 도쿄도미술관의 클림트전​에 이어 롯폰기의 국립 신미술관에서도 빈•모더니즘 클림트 실레전이 열렸다.

비 내리는 국립신미술관 / 2019년 6월, 롯폰기

비가 와서인지 미술관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20분 이상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었던 도쿄도미술관의 클림트 전과 달리 표를 살 때도, 전시관에 들어갈 때도 대기줄이 전혀 없었다.

국립신미술관 / 2019년 6월

어쩌면 인파의 차이는 대여해온 작품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도쿄도미술관에는 <유디트>와 <The Three Ages> 등 교과서에서도 봤을법한 대작들이 몇 점 왔으나, 국립 신미술관에서 전시하는 클림트와 실레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그림들이었다.

빈•모더니즘 클림트 실레전 / 1,600엔

도쿄도미술관과 입장료와 오디오 가이드 모두 가격이 같다. 입장료는 성인 1,600엔, 오디오 가이드는 550엔이다. 일본, 특히 도쿄의 미술관은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웬만하면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갖추고 있다. 기획전 영어 도록을 파는 게 드물다는 건 아쉽지만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덕분에, 관람하는 것 자체는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관보다 훨씬 편리하다.

사진기 마크가 있는 곳에서만 플래시 없이 촬영이 가능하다

전시가 시작되는 곳에 빈 박물관 관장의 인사말이 있었는데 한국어로도 안내되어 있었다.


저희 박물관은 빈의 칼스 플라츠에 있는데, 실은 이 건물을 증축, 개축하는 기간 중에 폐관을 하기 때문에 본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미술 애호가 입장에서는 개수 공사 중에 저희 컬렉션을 3년 동안 잃게 되는데, 그 대신 일본 전시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빈의 훌륭한 컬렉션을 세계 굴지의 미술관에서 선보여 기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도쿄 국립 신미술관과 오사카 국립 신미술관은 빈 컬렉션을 전시하는 최고의 무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빈 뮤지엄 관장)


빈 박물관은 코톨드 갤러리처럼 박물관의 리노베이션 때문에 3년 동안 문을 닫게 되었고, 그동안 소장품들은 세계를 여행하게 된 것 같다. 인사말을 끝까지 읽어보니 도쿄에서 전시를 마친 후에는 오사카로 이동하는 것 같다.

기획전 때문인지 평소보다 2시간 반 연장 운영했다

클림트와 실레의 작품은 전시 후반부에 등장했고, 초반엔 빈의 역사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배치했다. 그래서 무명작가나 작자 미상의 그림도 있었다.


특정 작가 개인을 강조하기보다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다양한 소장품들을 흐름에 맞게 전시하여, 작년 초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예르미타시 박물관전​과 비슷했다.

회화 외에 가구와 공예품도 꽤 있어서 2014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관람했던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 특별전이 생각나기도 했다.

빈의 프리메이슨 롯지, 1785

위의 작품도 작가는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소설 속에서만 실재하는 줄 알았던 프리메이슨에 대한 그림이었다. 프리메이슨은 일종의 비밀 결사 단체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영향을 받아 결성되었다고 한다.

영화 <Eyes Wide Shut>, 1999

오디오 가이드에서 흘러나오는 비밀 단체라 눈을 가린 후에 들어와 가입을 허락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이 생각났다. 실제로 이 영화가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얘기도 있다.

프란츠 슈베르트, 빌헬름 리더, 1875

슈베르트도 빈에서 활동했기에, 슈베르트가 묘사된 작품도 더러 있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슈베르트’ 하면 떠오르는 그의 초상화였다. 항상 사전이나 교과서 같은 데서 보다가 실물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전시 중반부에는 ‘근대(모던) 도시 빈의 탄생’이란 챕터로 빈의 도시계획을 담은 그림과 모형, 조형물 등이 소개되었다. 오토 바그너가 빈을 근대도시로 바꾸는데 앞장섰다. 이를 보니, 19세기에 파리의 도로와 상하수도 시설 등을 정비한 조르주 오스만 남작이 떠올랐다.

팔라스 아테나, 구스타프 클림트, 1898

어느 순간부터 클림트의 작품들이 물밀듯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팔라스 아테나>라는 작품은 황금으로 뒤덮여 숨이 멎을 정도였다. 나에게 클림트는 만화풍의 화가, 혹은 황금의 화가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기 전까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패권 아래 꽃을 피웠던 빈 분리파의 전람회 포스터들도 놀라웠다. 19세기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모던한 디자인이었다.

인상파도 아니고, 나중 세대인 야수파나 입체파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클림트의 작품세계는 매력적이었다. 그의 그림들은 매우 장식적이고 화려했다. 만화를 닮은 가느다란 화풍은 묘하게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구스타프 클림트, 1902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용됐던 작품은 이번 전시의 얼굴,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이었다. 에밀리 플뢰게는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만 하며 살았던 클림트와 플라토닉 한 관계였다. 그들은 공식적인 애인 사이는 아니었지만, 클림트가 영혼의 동반자 격으로 특별하게 생각하여 죽을 때도 에밀리를 불러달라 했다고 한다.

사실주의와 거리를 두고, 처음으로 장식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처음 전시된 건 1903년에 열린 18번째 빈 분리파 전시에서였다. 이 전시는 ‘클림트 전시’로 알려져 있다. 꽤 호평을 받았음에도 정작 모델인 에밀리 본인은 이 초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1921년에 빈 박물관 컬렉션으로 편입되었다.

자화상, 에곤 실레, 1911

에곤 실레는 위의 <자화상> 외에는 유명한 작품이 전무하여 좀 아쉬웠다. 전반적인 전시의 구성력과 미술관의 시설, 편의성은 국립 신미술관이 도쿄도미술관보다 압도적인데 비해, 대여해온 작품의 질은 클림트 전이 있는 도쿄도미술관쪽이 월등했다. 그래서 도쿄도미술관에 관람객이 더 몰렸는지도 모르겠다.

숲속에 있는 듯한 국립신미술관 / 2019년 6월, 롯폰기

관람이 끝나고 밖에 나오니 어느새 비가 그쳐 있었다. 미술관 주위의 나무들은 오후 내내 내린 비를 맞고 잎에 물을 잔뜩 머금어 더 초록빛을 내뿜었다.

미드타운과 가까운 롯폰기의 국립 신미술관. 땅값도 높은 미나토구의 노른자이자, 도쿄 도심의 한가운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숲 속에 와있는 것만 같다. 전시를 둘러보고 이후에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여기서 서쪽 동산의 아오야마 영원(공동묘지)을 넘으면 아오야마의 조용한 고급 주택가와 오모테산도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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