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이치젠
D가 망원동에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텐동 집이 있다고 했다. 대개 망원역 근처의 맛집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합정역과 망원역 사이의 서교동에 있는 경우도 많은데, 이 가게는 망원동 안쪽에 자리 잡아 주택가와 망원시장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처음 가는 곳이었지만 어떤 가게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가게 앞으로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 시까지만 영업한다고 했는데, 혹시 실컷 기다렸는데도 줄만 서고 먹지는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다섯 시가 되기 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좌석은 모두 바 석으로, 가게는 넓은 편이 아니다. 테이블이 없기 때문에 4인 이상은 어려워 보이고, 두 명이 가기에 딱 적당하다. 오픈 키친이라 위생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믿을 만하다. 튀김을 만드는데 상당히 손이 많이 간다는 걸 깨달을 수 있는 자리였다. 인테리어는 살짝 복고적이며 따뜻한, 편안한 스타일이었다.
가성비가 좋은 메뉴는 가장 기본인 ‘이치젠 텐동’이다. 에비 텐동과 아나고 텐동엔 가지가 없고, 스페셜 텐동엔 장어 하나와 단호박 하나가 들어갔을 뿐인데 이치젠 텐동보다 6,000원이나 비싸다. 반면 이치젠 텐동은 요즘같이 만원이 가볍게 넘는 물가 수준에, 9,000원의 착한 가격이 매력적이다.
많이들 주문하는 사이드 메뉴인 바질 토마토. 화이트 와인과 바질로 절였다고 한다. 바질 잎이 하나 얹어져 있는 게 귀여운 메뉴지만, 바질 잎을 먹지 않는 이상 바질 맛을 느끼긴 어렵고, 술을 따로 시켜먹지 않는 이상 술에 취하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일찍 문을 닫는 가게라 술을 안 팔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맥스, 아사히, 삿포로가 있었다. 가장 희귀해 보이는 삿포로를 주문했다. 병맥주가 나왔다. 작은 맥주잔 두 개가 가득 차는 양이었다.
맥주를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아사히와 기린 이치방 시보리, 삿포로를 완벽하게 구분하진 못한다. 친구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이날로써 확실히 알게 된 건, 병맥만큼은 셋 중에 삿포로가 가장 맛있다는 것이었다. 실온에 뒀을 때, 특유의 소맥 맛 같은 알코올 향이 가장 덜 났다.
텐동이 나오기 전에 따뜻한 장국이 나왔다. 무심히 넘어갈 수 있는 부가적인 음식이지만, 상당히 감칠맛이 풍부했다.
새우튀김 2개, 잘게 잘린 오징어 튀김, 연근, 가지, 꽈리고추, 온천 계란, 김 튀김 등 풍성한 밥 한 그릇이 등장했다. 다른 튀김들은 ‘시라카와 덴푸라’에서도 봐서 익숙하지만 김 튀김은 처음 봤다.
튀김 자체도 맛있었으나, 튀김에 뿌려진 간장 소스가 가장 맛있었다. 보통 이런 걸 먹으면 튀김을 다 먹고 밥만 많이 남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도 간장 소스와 장국의 힘으로 남은 밥을 다 먹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