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이치젠
3/20(금)부터 연어, 주꾸미, 콩 가키아게(완두콩, 줄기콩, 샬롯, 참나물), 땅두릅, 아스파라거스, 표고버섯, 달래 등이 들어간 봄 텐동이 시작된다는 이치젠의 인스타 게시물을 보고, 퇴근길에 예정에 없던 망원동 이치젠으로 달려갔다. 봄 텐동이 개시되는 첫째 날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원래 지옥철인 신도림행 2호선 내선순환 열차가 여유로웠고 6호선 환승하는 합정역까지 편안하게 앉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망원역에 내리니 바이러스 유행과 무관한 세계에 온 것 같았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인데도 골목과 가게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금요일 망원동은 마치 서울여행 온 것 같았다. 2호선 신도림행 지하철도, 신도림역 플랫폼도 놀랄 만큼 사람이 없었는데 이치젠은 여전히 줄이 길었다. 코로나로 인한 재정적 타격이 거의 없어 보였다. D가 일찍 도착해 줄을 섰기 때문에, 다행히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다. 줄은 거의 30분을 섰던 것 같다.
밖에 서서 기다리다가 슬슬 들어갈 차례가 다가오면 점원이 메뉴판을 주며 미리 주문을 하라고 한다. 그런데 손에 들려준 메뉴판에 인스타에서 봤던 봄 텐동이 없어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이미 다 팔려버린 건 아닐까.
가게에 들어간 후,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을 때 봄 텐동을 먹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봄 텐동은 매진이었다. 하루에 열 그릇만 판매하신다고 했다. 인스타에 ‘소진’ 혹은 ‘매진’되었다는 얘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전화도 안 해보고 무작정 찾아왔던 게 너무 안일했다.
“하루에 10그릇이면 낮에 오픈하자마자 와야지 먹을 수 있겠군요.”
점원분은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하셨지만, 적어도 낮에는 와야 봄 텐동이니 여름 텐동이니 각종 한정메뉴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망원동 주민들이 부러운 순간이었다.
봄 텐동 대신에 스페셜 텐동을 주문했다. 지난겨울에 이치젠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는 가장 기본적인 이치젠 텐동을 먹었는데 이번엔 봄 텐동을 놓친 허탈함을 달래기 위해 6,000원 더 비싼 스페셜 텐동을 먹었다.
스페셜 텐동은 이치젠 텐동에는 없는 장어와 단호박 튀김이 들어있다. 작은 가게를 채운 손님들이 모두 스페셜 텐동을 먹기라도 하는 건지, 커다란 튀김 냄비에 하얀 튀김옷을 입은 붕장어들이 쉴 새 없이 뛰어들었다.
확실히 9,000원짜리 일반 텐동보다 스페셜 텐동은 양이 많았다. 약간의 과장을 담으면, 스페셜 텐동의 장어는 사람 팔뚝만 했다.
배가 부를 때, 소화제로는 맥주가 최고다. 서울에서 비교적 보기 쉬운 아사히를 뒤로 하고, 삿포로 병맥주를 시켜 D와 둘이 나눠 마셨다. 꿀맛이었다. 언젠가부터 느낀 건데, 캔맥주보다 병맥주가 훨씬 신선하고 맛있다. 그리고 잘 관리되지 않은 어중간한 생맥주를 마시는 것보다 냉장고에서 갓 나온 병맥주를 마시는 편이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