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자원방래
‘고량주’란걸 처음 먹어본 건 대학교 1학년 개강파티 때였다. 상경대 앞마당에서 중국요리를 배달시켜 먹었는데 기름진 중국음식을 먹다가 갈증이 나서 옆의 생수 페트병에 있는 물을 마셨더니 술이 섞여 있어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물에 고량주가 섞인 것이었다.
이런 기억 때문에 고량주는 안 좋은 첫인상이 있었는데, 입사 이후 중식당에서 회식을 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함께 테이블에 있던 요리도, 그 중식당 이름도 기억이 안 나지만 연태 고량주만큼은 기억이 난다.
저녁을 사주신 이웃 부서 부장님은 연태 예찬론자셨다. 도수가 높지만 깔끔하고 뒤끝이 없기 때문에 회식을 파하고 집에 갈 때쯤엔 술이 깬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부장님의 말씀처럼 섞어 마시지만 않으면 숙취가 없는 술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회식 장소 중 중국집을 가장 선호하게 되었다.
알코올램프 같은 냄새와 어정쩡하게 단맛이 나는 주정 때문에 소주는 정말 싫어하지만 고도수의 술은 보드카를 제외하면 마실 수 있게 된 것도 연태 고량주를 소개해준 부장님 덕분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중국집에서 연태 고량주를 사주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최근에 옆 부서 선배님이 강남역 인근에서 가장 맛있는 칠리새우를 파는 자원방래에서 연태 고량주를 사주셨다.
심지어 선배님은 술을 잘 못 드시는데도 나를 위해서 연태를 사주셨다. 그래서 연태 고량주(소)는 내가 책임지고 마시게 되었는데, 덕분에 내 주량이 적어도 연태(소) 한 병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