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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Apr 30. 2020

파리의 오후

망원동 밀로밀

망원동 희우정로의 밀로밀 / 2020년 4월

망원동을 좋아해 여러 번 갔지만 이치젠이 있는 포은로​와 망원시장 쪽 말고, 희우정로에 가본건 처음이었다. 망원역보다는 망원 한강공원 쪽에 가까운 곳으로 발리 밥집을 표방하는 발리 인 망원​, 방비앙에 온듯한 라오스 식당 라오 삐약​ 등 이색적인 음식점이 군데군데 있었다. 여느 때처럼 유동인구가 많았고, 삼거리 형태의 골목에 “빵”이라고 적힌 큰 글자가 인상적인 오래된 벽돌 건물이 있었다.

밀로밀의 소금버터빵 / 1,500원

나는 이 빵집이 망원동에서 바게트로 유명한 ‘블랑제리코 팡’인줄 알았다. 가게 문 위의 천막에 ‘블랑제리코’란 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빵집은 블랑제리코팡이 아닌, 밀로밀​이라는 곳이었다. 망원동 주민이 아니라 사정을 모르기에 확실치는 않지만, 예전에 블랑제리코팡이 여기 있다가 이전한 게 아닌가 추측할 뿐이었다.

아무튼 가게에 들어갔을 때는 이곳이 블랑제리코팡인줄 알았고, 그 베이커리는 바게트 맛집이라 들었기 때문에 매대에 딱 하나 남아있던 바게트를 샀다. 주문하자마자 마치 긴 떡국떡처럼 쓱쓱 썰려져 종이봉투에 담겼다. 가방에 종이봉투가 들어가자 않아 어쩔 수 없이 빵 봉투를 안고 길을 걸었는데, 다소 불편했지만 파리 주민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한강과 평행선을 그리는 희우정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걸어가니 진짜 블랑제리코팡​이 등장했다. 밀로밀 뿐만 아니라 블랑제리코팡에도 ‘빵’이라고 직관적으로 쓰인 간판이 있었다.

바게트가 유명하다는 블랑제리코팡 / 2020년 4월

‘바게트와 크루아상 달인의 빵집’이라고 쓰인 문구를 보니, 둘 다 먹어보고 싶었지만 내 손엔 이미 큼지막한 바게트가 들려있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블랑제리코팡을 지나 요즘 인스타에서 입소문이 나고 있는 망원로1길의 하이 놀리​로 향했다. 인스타에 오늘 만든 빵 목록이 올라오는데 하나같이 다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특히 ‘마늘종 페이스트리’가 정말 궁금해서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망원동 하이놀리 / 2020년 4월

그런데 폐점 시간은 6시 반인데 5시가 되기 전에 이미 문을 닫았다. 모든 빵이 품절되었기 때문이었다.

파리쥬뗌에서의 아침식사 / 2019년 6월

결국 밀로밀에서 산 바게트 빵만 건졌다. 다음날 아침, 커피를 내려 함께 먹으니 작년 파리에 갔을 때 파리 쥬뗌에서 먹던 조식 생각이 났다.

Le Bistrot des Vignes / 2019년 6월

파리에 갔을 때, 비스트로에서 식사를 하면 식전에 바게트 빵이 나왔는데 바게트 대국이라는 명성에 맞지 않게 빵이 질겨서 먹기 힘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침에 만든 빵이 저녁쯤 되면 질겨지는 것이었다.

파리쥬뗌에서의 인생 바게트와 모닝커피 / 파리 16구

그러나 파리 쥬뗌의 아침식사에 나오는 바게트는 민박집 사장님이 아침 일찍 16구의 동네 빵집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바게트를 사 오셔서 쫄깃하고 부드러웠다. 내가 그동안 바게트가 질기다고 생각했던 건 잘못됐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함께 마시던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도 얼마나 맛있던지. 인생 바게트였다. 버터나 쨈을 굳이 곁들이지 않아도 맛있었다. 아마 자제력이 없으면 그 자리에 앉아 혼자 한 바구니를 다 비웠을지도 모르겠다.

밀로밀의 바게트와 커피 한 잔 / 2020년 4월

밀로밀의 바게트는 파리에서 아침에 먹었던 ‘인생 바게트’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하루 지났음을 감안해도 질기지 않고 준수했다. 다만 ‘파리의 아침’에 비해 쫄깃한 식감은 조금 떨어졌다. 그래도 ‘파리의 저녁’에 등장하는 비스트로의 질긴 바게트보다는 훨씬 맛있었다. 그 둘의 중간쯤 되니, 이 바게트를 ‘파리의 오후’라 불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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