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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Dec 19. 2020

비 오는 밤의 누아르

동물의 세계

2020년 6월 29일 월요일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는 열한 시 반경, 아버지가 밖에 나가셨다가 쓰레기장 근처에서 덕이를 발견하셨다.

죽어가듯 기운이 없었던 전날​과는 달리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눈이 또랑또랑하고 생기가 있었다. 덕이는 고양이지만, 얼굴이 강아지를 닮았다.

곧 덕이는 방향을 틀어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잇길을 따라 6동의 분리수거장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다시 살아나서 다행이었다. 전날 밥그릇에 넣어준 멸치를 먹었는지 궁금했다.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했다. 비가 안 올 줄 알고 밖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집에 갈 때쯤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오니 계곡에 궁예가 있었다.

전날 밤에 호랑이와 한바탕 싸웠지만​ (궁예가 일방적으로 지는 분위기였지만) 멀쩡해 보였다.

그때 궁예의 맞은편에 호랑이가 출현했다.

궁예가 머무르는 곳과 대치하며 언제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경계 중이었다.

비가 내리자, 지붕이 있는 자전거 거치대에서 둘은 서로 마주 보았다. 전투 발발 직전이었다. 호랑이가 기선을 제압했고, 궁예는 위축되어 있었다. 전날처럼 호랑이가 무난히 이길 듯 보였다.

그때 절벽에서 궁예를 닮은 또 다른 고양이가 내려왔다. 궁예를 닮아 흰 털에 꼬리가 까맣지만, 머리에 변발 모양의 털이 있는 여진이​었다. 궁예가 호랑이와의 싸움을 위해 조력을 요청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나중에 여진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는 용역을 맡기엔 너무 순하고 겁이 많은 고양이였다.

그런 긴장 상태에서 맞은편 미끄럼틀 쪽에 덕이가 등장했다. 호랑이가 밖에 나가 있으니 무슨 일인가 해서 나와본 것 같았다. 그러자, 궁예와 대치 상태에 있던 호랑이가 덕이가 있는 미끄럼틀 쪽으로 철수했다. 호랑이 혼자라면 고양이 두 마리도 이길 수 있겠지만, 덕이를 지키는 상황에서는 방어가 최선이었던 것이다.

호랑이는 덕이 옆에 웅크리고 다른 고양이들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깨어있었다. 덕이는 호랑이의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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