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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Nov 25. 2020

한밤의 추격전

덕이를 위하여

6월 28일 일요일


사잇길로 가보니 부뚜막에 호랑이가 있었다.

호기심이 많고 활달한 호랑이. 선선한 바람이 불자, 호기심이 발동하여 공기가 흐르는 대로 몸을 가눈다.

호랑이가 부뚜막에서 무얼 하나 올라가 봤더니 졸고 있었다.

멸치를 주려고 가져왔는데 어쩌나. 호랑이 앞에 멸치를 높고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밖으로 나갔을 때는 저녁 여덟 시가 넘었을 때였다. 아버지가 “궁예 등장했다”라고 하셨다.

그루밍하는 호랑이

그러나 사실 나의 관심은 호랑이에게 있었다.

“호랑이도 있어요?”
“응.”

나는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호랑이가 돌 위에 앉아 있었다. 내가 낮에 주었던 멸치는 사라져 있었다. 다행히 호랑이가 잠에서 깬 후 먹은 것 같았다.

호랑이는 계곡 위에 올라가 오른팔에 얼굴을 기대고 평상 위의 휴식을 즐겼다.

그때 계곡 꼭대기에 있던 궁예가 호랑이가 있는 쪽으로 점점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널브러져 누워있던 호랑이가 갑자기 자세를 가다듬고 궁예에게 “야옹야옹” 하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기싸움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마주 보며 노려보았다. 가족들은 바라보다 지쳐서 집으로 들어갔고 나 혼자 멀리서 그 둘을 지켜봤다.

갑자기 궁예가 계곡 바닥으로 내려와 6동쪽으로 재빨리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호랑이도 재빨리 계곡에서 내려왔다.

호랑이가 “야옹”이라고 한마디 하더니 궁예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목격한 영역싸움이었다. 호랑이의 목소리는 경고라기에는 매우 순하고 예뻐서 소리만 들었을 때는 싸움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진지한 추격전이었다.

궁예는 오솔길을 지나 7동 뒤 풀숲까지 달아났다. 둘 다 달리는 속도가 매우 빨라 카메라에 담지 못하였다. 궁예는 궁지에 몰리자 풀숲 안으로 몸을 숨겼고, 뒤따라 호랑이도 수풀 안으로 사라졌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한 편의 누아르물 같았다.

두어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가 밖에 나가셨다가 찰리를 발견하셨다.

찰리는 아파트 체육시설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몸을 돌려 노려보았다.

우리가 적이 아니라 느꼈는지, 눈에서 독기가 사라지고 금세 순한 눈망울이 되었다.

이제 안심한 걸까, 바닥에 엎드려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까 호랑이와 궁예와의 결투는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서 사잇길로 가보았다. 누군가가 옥탑 위에 있었다. 자세히 보니 호랑이였다. 영역싸움은 호랑이의 승리로 끝난 것 같았다.

찰리 채플린을 닮은 찰리는 호랑이의 가시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조금 후 찰리가 호랑이가 있는 부뚜막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호랑이가 어디 있는지 살펴보는 듯했다.

호랑이는 여전히 옥탑 위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탑 밑에서는 덕이가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호랑이는 자지 않고, 덕이 근처에 침입자가 오지 않는지를 수시로 경계했다.

하루가 참 길었다. 임종의 위기를 무사히 극복한 덕이​의 아침, 팔색조의 매력을 보여준 호랑이​의 오후, 한바탕 추격전이 벌어진 밤까지.

호랑이는 무엇을 위해 주변을 경계하는 걸까 궁금했으나, 잠을 자지 않는 호랑이의 모습을 보고 그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덕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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