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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Jan 20. 2021

나는 밥순이다

2017년 3월 8일 수요일


회사에서 봉급 받으며 입에 풀칠하고 산지 7년, 나는 이름을 잃었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회사에 들어오면 3년은 장님, 3년은 귀머거리, 3년은 벙어리로 살아야 한다. 벌써 6년을 용하게도 버텼네."

"제가 잘한 걸까요? 전 아직 장님과 귀머거리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직 그만두지 않고 여기에 있다는 건, 네가 장님과 귀머거리를 그런대로 해낸 거다. 이제 마지막으로 벙어리가 될 차례다. 이번이 제일 녹록지 않을 거다."

"왜죠? 그냥 말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7년째라면, 이제 경험도 어느 정도 쌓이고 머리도 컸을 때잖아. 입 밖으로 나오려는 모든 말을 애써 뱃속으로 집어넣고, 때론 바보가 되어야 하지."

"..."

"벙어리라고 해서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글쎄요..."

"네 연차가 돼서 아무 생각이 없냐고, 일 좀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하라고 핀잔을 들을 거야. '주도적' '네 연차' 이런 단어를 듣게 된다면 경고음이라 생각하고 알아서 긴장하렴. 상사가 원하는 말은 잘 찾아서 내뱉어야 하는 앵무새 같은 맞춤형 벙어리가 돼야 해."


회사에서 벙어리가 되었으니, 그곳에 있는 나에겐 이름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니, 예언대로 나는 정말 바보 취급을 받았다. 상사에게 '주도적' '네 연차'라는 경고음을 들었고, 그래서 '주도적'으로 내 주관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더니 왜 나에게 얘기를 하지 않았냐느니, 중간보고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게다가 아직도 부서에서는 막내라 오만 가지 잡일을 하고, 거기에 선배들 일까지 돕고 나면 정작 내 업무를 개선할 시간은 부족하다. 그렇다고 자정까지 야근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내 업무가 아닌 건 적당히 일을 쳐냈더니, 상사에게 토스하지 말라고 혼났다.

서럽다, 연차 높은 막내의 삶이란.


그때 회사생활 9년 동안은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이가 속삭였다.

"욕을 안 먹으려고 아등바등하지 말아라. 네 머릿속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다시 생각해. 회사는 당연히 욕먹는 곳이다. 네 월급은 욕받이에 대한 대가이다. 욕먹을 때마다 넌 밥값 한 거야."

아, 그렇구나. 그래서 이렇게 욕을 많이 먹고살았구나. 이 간단한 이치를 왜 몰랐을까. 그래서 난 그날부터 밥순이가 되었다.



나에게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있다.
그러나 회사에서 나의 이름은 밥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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