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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Jan 22. 2021

육식동물의 비애

2017년 8월 12일 토요일


악몽을 꿨다.
잠에서 깨니 아직 깜깜한 새벽이었다. 곧 다시 잠들었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강렬하고 끔찍한 꿈이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던 '동물의 왕국'에서 나올법한 초원이었다. 목이 긴 캥거루 같이 생긴 포유동물 한 마리가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임은 느렸으나 굼뜨지 않았고 품위가 있었다. 그녀에겐 새끼 두 마리가 있었다. 편의상 그녀를 A라 부르겠다.

그때 갑자기 한 마리의 육식동물 B가 나타났다. 몸집은 작았으나 사나웠다. 얼굴은 여우를 닮았다. 그가 몸을 힘껏 낮추고 A에게 접근했다. 뒷다리를 굽혀 힘껏 도약하더니 A의 다리를 노렸다.

A는 뒤늦게 B가 목전에 와있음을 깨달았다. 다리를 물리기 직전, 허들을 넘듯 왼쪽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들어 올렸다. 그 동작은 너무 느렸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A의 몸은 전속력으로 달리기엔 너무 무거웠다.

결국 꿈속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B에게 목을 물려 숨이 끊어져가는 A의 모습이었다. 너무 슬프고 끔찍했다. 무대 밖의 나는, 악행을 저지른 B를 비난과 경멸의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B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육식동물로 태어난 걸 어쩌란 말이냐. 도리어 그가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꿈에서 깼다. 기분이 나쁘고 역겨웠다. 새벽에 잠을 설친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날 마무리지어야 하는 힘겨운 업무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악몽을 꾼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잠이 들었다.
날이 밝은 후, 출근했지만 악몽의 잔상이 선명했다.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던 리서치 업무를 하던 중, 조언을 얻고자 작년 회사를 그만둔 상사에게 연락을 했다. 업무 얘기를 하던 중, 그분이 과거에 나한테 했던 조언이 떠올랐다.

"희수야, 아끼는 후배니까 조언 하나 할게.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하렴. 전문 자격을 따고 독립해야 돼. 너 같은 초식동물은 이런 세렝게티 같은 곳에서 먹잇감이 될 거야. 예를 들면 조 부장이나 김 과장 같은 그런 사람들 말이지. 네가 그런 육식동물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분의 세렝게티 이론이 1~2년 동안 내 머릿속에 잠들어 있다가 무의식 속에 꿈으로 등장한 걸까.

그래도 지금의 나는 1~2년 전의 나와 다르다. 내가 초식동물인 건 분명하다. 나는 사내정치에도 관심 없고, 남의 머리와 어깨를 짓밟으며 먹이사슬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나 나는 무참히 짓밟히는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육식동물에게 포획된 초식동물 A가 아니다. 오히려 무대 밖에 있는 제3의 인물에 가깝다. 지난밤 내 꿈에서 그 참혹한 광경을 무대 밖에서 바라보던 외부의 시선이 바로 나이다. 나는 포식자들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약자를 짓밟으며 살아야겠냐고, 그것만이 너희들 인생의 목표일 뿐이냐고. 당신들의 삶의 의미는 이 작디작은 우물 같은 회사일뿐이며, 여기서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서는 것으로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냐고.

그때 그들이 대답한다. 육식동물로 태어난 게 나의 잘못이냐고, 나는 십 수년간 이런 생활에 길들여졌다고, 회사 밖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그것이 나의 전부라고. 내 삶의 방식을 비난하지 말라고. 초식동물을 사냥하던 육식동물의 눈, 결백을 주장하던 그의 눈, 나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외침. 그것이 바로 그들이 주장하는 육식동물의 비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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