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동과 청담동에서
파스타 등 서유럽 음식에 자주 등장하는 식재료 허브인 바질. 이 매력적인 식물은 음식뿐 아니라 칵테일에도 제법 잘 어울린다.
#1 V&B Combine
바질이 술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은 D 덕분에 알았다.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던 작년 여름. 나는 절친한 친구 D에게 SOS를 보냈고, 당시 단골이 될까 말까 갈림길에 서있던 바에서 반주를 곁들여 파스타를 먹기로 했다.
야근 후 불볕 더위를 뚫고 역삼동에 도착하니 D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칵테일도 이미 마시고 있었다.
"나 이미 한 잔 시켰어."
유리잔에서 짙은 허브 냄새가 났다.
"이름이 뭐야?"
"V&B Combine이라고 합니다."
칵테일을 만드신 매니저님이 말했다.
"보드카와 바질이 들어갔다는 의미이죠. 예전에 제가 일하던 가게에서 만들던 칵테일이었습니다. 친구분이 보드카도, 바질도 좋아한다고 하셔서 만들어 드렸어요."
허브 리큐르인 베네딕틴과 샤르트뢰즈는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바질과 어우러지니 향긋하고 산뜻했다.
바질은 파스타나 피자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칵테일의 가니쉬나 주재료로 왕왕 쓰이는 허브였다.
우리는 이 칵테일을 마시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메뉴에는 이 칵테일이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 매니저님은 예전에 일하던 바의 시그니처 칵테일이었기 때문에 다른 바의 메뉴에 실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럼 그 바의 이름은 뭐에요?”
“믹솔로지라고 합니다.”
#2 허브 김렛
“믹솔로지요?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엄연히 말씀드리면 제가 일했던 믹솔로지는 없습니다. 지금 있는 믹솔로지는 그 때 같이 일했던 형님들이 개업하신 새로운 바이죠.”
그 얘기를 들은지 일년만에 믹솔로지를 찾았다. 사실 처음 방문한건 2017년 초였지만, 꽤 오랜 공백 기간을 두고 그해 여름에 제대로 다시 방문했다.
둥근 얼음이 잠긴 시원하고 청량한 칵테일. 거기에 향긋하기까지 하다. 김렛에 바질과 트러플 오일 세 방울 정도가 들어간 믹솔로지의 대표 칵테일인 허브 김렛이다.
언제인가 마리텔에도 나와서 더욱 사랑을 받고 있다. 바에 앉은 사람들 중 (특히 여자 손님들) 대부분은 이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
나는 사실 남들이 다 좋아하면 나는 왠지 ‘아니오’를 외치고 싶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중적이고 인기 많은 칵테일에 나도 덩달아 빠져버렸다.
믹솔로지 출신들은 허브와 과일 칵테일 전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V&B 콤바인과 허브 김렛 모두 맛이 출중했다. 둘다 바질이 들어갔지만,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기주가 보드카고 후자는 기주가 진이다.
허브 김렛은 심지어 술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상큼한 나머지, 블러디 메리보다 해장술에 걸맞는 것 같다. 식전주로도, 디저트 칵테일로도, 해장주로도 손색이 없는 칵테일이다.
#3 T&T
청담동 명품거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화이트바. 안주가 너무 맛있고 라인업도 다양해 다이닝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칵테일바이다.
어느 날, 아보카도 치킨 샐러드를 먹다가 티앤티라는 칵테일을 곁들였다.
티앤티는 사실 폭탄의 이름이다. 그 이름처럼 도수는 꽤나 세다. 이 칵테일에도 허브 김렛처럼 바질과 트러플 오일 몇 방울이 들어간다. 허브 김렛보다 새콤달콤한 맛은 덜하지만, 느끼한 맛을 잡는데 효과적이다. 도수가 강해서 가성비도 괜찮다. 트러플향도 도수만큼 강한 편이다. 화이트바에서 내가 좋아하는 칵테일 중 하나였다.
나는 고수라면 기겁하고, 민트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허브는 무조건 나와 맞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바질이 들어간 칵테일은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위의 세 칵테일 중에서 마시고 싶은 칵테일이 있다면 아무 곳이나 방문해보면 좋겠다. 그 어떠한 곳에 가더라도 기대 이상으로 맛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