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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씨 Dec 25. 2017

나고야 시립미술관 랭스미술관전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구 사카에

여행의 계기



서울아트가이드 10월호

이번 나고야 여행의 계기가 되었던 나고야 시립미술관의 랭스미술관전. 랭스는 샴페인의 산지인 샹파뉴로 유명한 곳이나, 5만여점의 미술품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이번 초대전에는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을 포함한 70여점이 나고야로 왔다.



나고야 지하철 후시미역 근처에 나고야 시민들의 휴식처인 시라카와 공원이 있다. 사람들이 분수가 있는 광장에서 체조를 하고 있었다. 거대한 구가 인상적인 나고야 과학관과 이날의 목적지인 미술관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미술관 입구에 있는 랭스미술관전 포스터를 보니 “내가 드디어 이 그림을 보러 나고야에 도착했구나” 싶었다.



랭스전 이후 샤갈전이 열릴 예정이다. 랭스전은 12월 3일에 막을 내리고, 12월 14일부터 내년 2월 18일까지는 샤갈전이 열린다.


입장료는 1,400엔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의 기획전와 비슷한 가격이다. 20불이 넘는 뉴욕의 미술관보다 훨씬 저렴하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나고야 시립미술관

뉴욕이나 파리의 미술관과 달리, 안타깝게도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



오로지 입구의 포토존에서만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결국 그림을 찍을 수 없다.






나고야 시립미술관의 일반적인 폐점 시간은 5시대이지만, 금요일 저녁은 8시까지 연장 운영한다. 평일 저녁이었음에도 관람객이 꽤 많았다. 게다가 여긴 수도인 도쿄도 아니고, 지방도시인 나고야인데도 말이다.

유럽도 아닌데 일본엔 근대 서양 회화들이 많다. 소장품도 많고, 이번 전시처럼 알찬 기획전도 자주 열린다. 그 원인으론 일본인들의 서양 미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함께, 제국주의 시절 서양 미술품을 의욕적으로 수집했던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전시관 초입엔 이름 모를 그림들만 있어서, 설마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 없는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벽 한쪽 끝에 내가 애타게 보고 싶던 그림이 있었다.


Death of Marat, Jacques-Louis David, 1793

그림은 생각보다는 크지 않았다. <마라의 죽음>은 내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나폴레옹 대관식>은 파도 같았지만, 이 그림은 잔물결 같았다. 생각보다 평범했다.

실제로 연예인을 만났는데 “TV에서 본 모습과 똑같다”고 느꼈을 때의 감정이었다.

생각보다 감격은 덜했지만, 꽤 오랜 시간 그림 앞에 서있었다. 그러자 이 그림의 기술적인 면이 눈에 들어왔다. 중력 때문에 아래로 쳐진 입가의 주름, 팔의 근육 묘사, 욕조의 물에 번진 붉은 잉크같은 피, 그 아래에 떨어진 칼과 편지. 어두운 벽면 한쪽에서 차오르는 최소한의 빛.

들여다볼수록 이 그림은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의 한 장면처럼 매우 극적이었다.



층계 사이에 쉬어가는 코너가 있었다. 랭스가 샴페인 산지라, 멈 Mumm 광고가 있었다.



아까 포스터에 게시된 샤갈전 홍보물도 있었다. 쿠폰이 있었는데, 이 쿠폰을 가지고 샤갈전에 입장하면 소정의 할인이 있다. 내년에 또 나고야에 오는건 어렵겠지만 혹시몰라 두 장을 챙겼다. 그러나 샤갈의 팬은 아니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 나고야에 다시 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다비드에게는 비행기를 탈 열정이 있으나, 샤갈에겐 그렇지 않다.



기획전이 끝나고, 뮤지엄샵에서 도록을 구입했다. 지난 뉴욕 여행 때, 프릭컬렉션에서 도록을 못산게 한이 되어 앞으로는 해외전시 때 꼭 도록을 사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영문판은 없었다. 일본어 한자를 읽지 못하기 때문에 해석은 요원하다. 나중엔 꼭 다시 일본어 공부를 재개해 도록을 번역할 수 있으면 좋겠다.



꽤 진지한 전시였으나 마지막은 폭소로 끝났다.



바로 뮤지엄샵 옆의 포토존 때문이었다.
<마라의 죽음>과 똑같이 사진을 찍으라고 나름 창의력을 발휘해 기획한 공간이었는데, 소품이 너무 웃겼다.



바닥에 떨어진 누가봐도 장난감 같은 조악한 식칼과,



송곳 같은 펜촉과 편지 위의 성의 없는 마리의 이름과 김칫국물 같은 핏자국. 그리고 마라가 머리에 쓴 터번까지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목욕탕 의자를 보고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이렇게 웃긴 상황에 나 혼자였다는게 아쉬웠다. 마라가 목욕을 하다 죽어서 목욕탕 의자를 가져다 놓은건가 싶었다. 어마어마한 재현이었다.






나고야 시립미술관은 2% 정도 아쉬운 곳이었다. 공립 미술관 특유의 공공시설 같은 차가움이 있었고, 그림 옆 라벨에 일본어와 불어만 있어서 외국인에게 상당히 불친절했다. 기대했던 멕시코 화가들의 벽화와 에꼴 드 파리 전시는 작품 수가 너무 적었다.

그러나 <마라의 죽음> 같은 유명한 작품을 빌려온 기획력과 인맥은 탁월했다. 게다가 이 미술관이 없다면 난 나고야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마라의 죽음>이 나를 나고야로 이끈 유일한 이유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이 여행의 최고의 순간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나고야의 선물은 다음날 방문한 야마자키 마작 미술관이었다.






Kathie

식도락과 예술, 도시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공간 그 자체에 대한 글을 씁니다. 여행에세이 <예술과 술의 도시, 뉴욕>과 <나고야 미술여행>을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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