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무라구 메이에키
내가 나고야에 간다고 하자, 도쿄의 센고쿠상은 Bar Neat라는 곳을 추천했다.
구글맵의 평점도 4.4 정도로 괜찮았다. 게다가 로컬의 신뢰를 받는 곳이지 않는가. 그에게 나고야에 여행 갔을 적에 알게 된건지 물었더니, 예전에 나고야에 조금 살았다고 했다. 이 정도면 도쿄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고야 사람의 의견과 다름없다.
문 앞에 커버차지와 위스키, 칵테일 등 일반적인 가격 안내가 있었다. 그나마 술 이름은 영어인데, 안주 이름은 피자와 파스타를 제외하고 가타카나이다.
구글맵 리뷰를 읽어보니, 칵테일은 그저 그렇고 안주는 별로지만 분위기만큼은 훌륭하다고 쓰여있었다. 칵테일과 안주에 대한 평이 마음에 걸렸지만, 센고쿠의 말처럼 나고야엔 좋은 바가 없었기 때문에 (구글맵 평점도 그렇고) 이곳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구글맵 리뷰처럼 분위기만큼은 일품이었다. “이곳은 여행지다. 나는 여행자다.” 라는걸 200% 실감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고야의 허니홀(연남동에 있는 이국적인 바) 같은 곳이다.
구글맵엔 스피릿 종류가 많지 않다는 평이 있었는데, 실제로 와보니 많기만 하다. 우리나라엔 수입되지 않는 호주산 진들이 즐비했고,
각종 올드 바틀과 독립 병입 위스키들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파리나 뉴욕처럼 샴페인을 팔길래 첫잔으로 샴페인을 주문했다.
파리 식당의 태틴저나, 뉴욕 바의 모에 샹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의 샴페인 한 잔은 여독의 긴장을 푸는 차 한 잔과 같았다.
공항에서 미소카츠를 먹은 이후 아무 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내가 그날 먹은 처음이자 마지막 음식이었다) 안주를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죄다 가타카나였다. 영어 메뉴는 없다고 했다. 히라가나보다 100배 읽기 어려운 가타카나. 가장 위에서부터 더듬거리며 읊어 내려갔다.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어 바텐더님에게 다음에 진토닉을 마실건데 잘 어울리는 안주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생선구이로 추정되는 안주를 추천했는데, ‘구운 생선’이라는 것 외엔 어떠한 정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무슨 생선인지도 알 수 없었다. 너무 위험하다 싶어 주문하지 않았다. 대충 읽고 스테이크 샐러드로 추정되는 안주를 주문했다. 800엔이었다. 스테이크 샐러드치고 상당히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안주가 등장하자 난 뒷통수를 맞은 듯이 멍해졌다. 야채 스틱이었다. 심지어 원티드에서는 기본 안주로 무한 리필되는 야채 스틱이었다.
어떻게 이 사단이 났나 다시 한번 메뉴를 읽어보니 ‘스테-키 사라다’가 아니라 ‘스티쿠 사라다’였다. 스틱 샐러드, 즉 야채 스틱이 맞았다. 역시 가타카나는 무섭다.
메뉴를 구경하다보니 위스키 중 생년 빈티지가 보였다. 어떤 위스키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수가 오래된 위스키임에도 불구하고 1,000엔대였다. 생년 빈티지를 언제 먹어보나 싶어 호기심에 주문했더니, 바텐더님은 죄송하다며 품절인데 아직 메뉴판을 업데이트하지 못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 처음에 안주를 주문할 때 얘기했던 것처럼 진토닉을 주문했다.
진토닉의 진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저는 시트러스한 맛이 좋아요.” 라면서. 그랬더니 키노비 세 병을 가져오셨다.
“저 그런데 도쿄 오션바라는 곳에서 키노비를 이미 마셔봤어요.”
가운데의 키노비는 Cask Strength도 아닌 Navy Strength라며 마치 Cask Strength처럼 도수가 쎄다고 했다.
“전 도수 쎈 건 싫어요.”
그랬더니 오른쪽 검은 키노비를 추천한다.
그러나 나는 셋 중 아무것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병이 예뻐 눈에 띄었던 호주의 진들이 궁금했던 것이다.
눈치를 챈 바텐더님은 투명하고 하얀 병들 사이에서 가장 투명한 병을 꺼냈다. 이름도 독특한 Poor Tom Gin이었다. 그 때 저 하얀 병의 진들이 모두 호주산이라는걸 들었다.
한국의 진토닉보다 양이 조금 적었다. 푸어탐진으로 만든 진토닉은 맛이 괜찮았으나 썩 마음에 드는 편은 아니었다.
그 때 오른편에 앉은 직장인들이 진토닉을 주문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브루클린진을 골랐다.
바틀 모양은 오래된 아빠 향수 같이 생겨서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다녀왔기 때문에, 브루클린이란 이름에 끌여 마지막 잔으로 브루클린 진토닉을 주문했다. 이름만 브루클린이고, 호주에서 만들었을까봐 확인사살도 했다.
“이거 브루클린에서 만든 진 맞죠?”
다행히 브루클린에서 만든 진이 맞았고, 맛도 올드탐진보다 훨씬 깊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브루클린 진이 있으면 좋을텐데.
마지막 진토닉을 천천히 마시며 바텐더 두 분이 다른 칵테일을 만드는걸 보았다. 과일이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길래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올드패션드였다. 한국의 올드패션드엔 오렌지필만 들어가는데 독특했다. 은희에게 얘기했더니 “일본의 올드패션드는 과일을 많이 넣어 굉장히 상큼하게 만들더라고.” 라고 대답했다.
내가 도착한 8시쯤엔 나를 포함해 세 팀밖에 없어서 매우 한적하고 파리 날리는 곳인가보다 했는데 9시를 넘기니 바 자리는 순식간에 만석이 되었다.
지방도시의 바라서 영어 메뉴가 없고, 직원들도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야채 스틱’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거다. 그러나 그만큼 관광지 식당이 아닌, 현지인들의 로컬 식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진이나 위스키 종류도 다양하고, 인테리어가 독특하고 매력있으며 분위기도 괜찮아 (리베르 탱고 같은 재즈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고야에 갈 경우 한 번쯤 방문하길 추천한다.
Kathie
식도락과 예술, 도시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공간 그 자체에 대한 글을 씁니다. 그림에세이 <매일, 그림>과 여행에세이 <나고야 미술여행>을 연재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