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7천만 원의 갈림길

by 이도시

저번 편에서 내가 9년 동안 못한 일을 코로나 덕분에 해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의 업무에도 타격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별 실적 없이,

나만 그런게 아니니까 그저 이 역병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며 상반기를 보냈다.


그렇게 흐지부지 여름이 왔는데 코로나는 열에 약할 거라는

출처 불분명한 추측과는 달리 더 활개 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남은 1년도 이렇게 지나갈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경제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겪게 된 글로벌 경제 불안정이 장기화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하늘길 하나 막혔다는 이유로 내가 일을 못 할 만큼 취약했구나 라는 경각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대는 나에게 벼락거지라는 새로운 이름도 지어주었다.


당시 나는 아주 보편적인 한국 대기업의 볼트 1을 담당하고 있는 사원이었고,

지금 회사에서 일을 더 해서 노동소득을 더 많이 버는 방법은 애석하게도 찾지 못했으며

자연스럽게 몇 가지 케이스들을 생각해 봤다.


1) 자산소득을 늘린다

1.1) 부동산

- 아파트 실거주, 아파트 갭투자, 오피스텔 실거주, 오피스텔 갭투자, 청약, 상가, 경매


1.2) 금융투자

- 국내주식, 해외주식, ETF, 코인?


1.3) 현물투자 (금, 선물)


2) 노동소득을 늘린다

2.1) 이직을 해서 연봉을 높인다


2.2) 전문직이 되거나 전문 자격증을 딴다

(하다 못해 이 회사에서 최악의 경우 쫓겨나듯 나가게 되어도 자격증 하나라도 갖고 싶었다)


2.3) 회사가 돈을 많이 줄 때까지 버틴다 (승진, 성과급)



몇 가지는 가볍게, 몇 가지는 아주 깊게 고려하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한동안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판단을 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하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들기도 했지만

독립을 해볼까? 집을 사야 할까? 자격증 공부를 해볼까?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마치 내가 앞으로

어떤 인생의 테크를 탈 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 같았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모은 전재산 7천만 원을 1번처럼 자산을 불리기 위한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를 해야 할지,


아니면 2번처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학원, 유학, 자격증 준비 등)

투자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의 자원은 한정되었고 20대 후반의 나이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으면

지금부터 밑그림을 그려야 했기 대문에 더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를 고민하다 보니 지금 이 방에서 집중하며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서로의 공간 분리가 없다 보니 퇴근 후 별도 자기 계발을 위해 시간을 낸다 하더라도

상식적인 취침시간은 지켜야 했고, 서로 다른 생활패턴을 가진 예민한 직장인 두 명이

좁은 공간에 같이 산다는 것은 몇 년이 지나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물론 엄청난 멘털의 소유자라면 환경이고 나발이고 단칸방 나눠 쓰면서도

하버드도 가고 유니콘 스타트업도 키울 수 있겠지만

일단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봐도 독립 말고는 답이 없었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이렇게 차근차근 정리해 보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은 좁혀졌다.

내 방을 가져야 했다.


목표가 생기자 수단이 더 뚜렷해졌다.

우리 자매가 각자의 독립된 공간을 가질 수 있는 넓은 전셋집을 찾거나,

혼자 오피스텔 원룸으로 옮기거나, 아파트 실거주 영끌매수를 하는 것이다.


우선 전세가 더 쉬워 보이니 퇴근 후, 주말에 원하는 동네를 뽑아 방을 구경하러 다녔다.

내가 원하는 조건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1. 통근이 1시간 이내일 것

신촌에서 우리 회사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걸렸고 (서울에서 서울로 이동하는데 경기버스를 탔다)

아무리 일찍 퇴근해도 집에 가면 8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예전에 식당이 9시에 닫았을 때는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밥을 허겁지겁 먹은 적 도 있다 ㅎ


2. 밤에 걸어 다닐 수 있는 산책로가 있을 것

평소에도 밤에 신촌에서 한강이나 마포까지는 걸어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필수


3. 오피스텔

가구나 가전을 살 여력도 없고 치안이 중요했기 때문에 대로변 오피스텔 위주로 봤다


4. 관리비, 이자 등 고정 주거비용이 50만 원을 넘지 않을 것


5.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고 정상계약 물건일 것!!!



일단 전세보증보험은

KB시세 기준 매매평균 하한가보다 전세보증금이 낮아야 하고 -> 이게 정말 찾기 힘들다

집주인이 외국인이나 공동명의면 안되고

(법인명의도 불가능은 아니지만 가입/승인절차가 조금 더 까다롭다)

그리고 근저당은 당연히 없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정상계약은 매매와 전세계약이 동시에 진행되거나 근저당이 있는데

잔금날 말소하는 특약이 들어가지 않는, 일반적인 전세 계약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거래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부동산 초보에게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뭐든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계약을 하고 싶었다.


보통 내가 찾는 치안이 좋고 살기 좋고 뚜벅이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교통도 좋은 지역은 남의 눈에도 좋아 보이고,

남의 눈에도 좋아 보이면 좋은 투자처라는 뜻이기 때문에 역전세 현상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오피스텔은 취득세가 4%로 1 주택 아파트보다 높다 보니 투자를 하는 매수자 입장에서

2억에 매수를 했다면 전셋값에 취득세를 엎어 2억 1천에 내놓아 무갭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튼 이런 모든 조건을 맞추는 집을 겨우겨우 찾아 들어갔다는 행복한 결말이지만...


이건 1막에 불과하다.


저 5번 조건을 맞추기 위해 발품을 팔면서 매물을 찾으면

아가씨 ~전세 귀해~ 요즘은 안 보고 그냥 계약해~라는 말을 들으면서 등본 까보면 근저당 잡혀있거나,

퇴근해서 급하게 가고 있는데 20분 전에 방금 누가 계약했다며 퇴짜 맞은 적도 허다해 지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깡통전세, 역전세가 심한 상태에서

한 다리만 건너면 전세보증금 못 받았다는 사례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작정하고 사기를 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증금을 돌려주고 싶어도 다음 세입자를 못 구하면 못 돌려주는 상황이기에

부동산 시장의 생태계를 더 알아가면 알 수록 이럴 바엔 그냥 내가 하나 사버려??

(심지어 오피스텔은 대출 70%까지 나옴)


오피스텔이 뭐야, 나도 풀로 당겨서 집 등기 쳐???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어차피 지금 돈 모아도 집을 못 산다는 말 대신

진지하게 대출도 알아보고 계산기도 두드려보며

안되면 되는 방법을 찾는데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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