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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연필 May 31. 2017

맞춤식 인간관계

어떤 거 좋아해요? 어떤 거 싫어해요?

여덟 살. 당고개역 지하보도와 중계 근린공원 벤치에서 주로 데이트를 했었다. 첫 연애이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그래도 그냥 옆에 앉아있는 것이 좋았고,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좋았다.


동갑내기 연애지만 싸운 적은 별로 없었다. 비슷한 것이 있다면, 그녀가 불만을 토로하면 받아들이고 사과하던지 또는 이해할 수 없어서 왜 그게 불만이 되는지 설명을 부탁하는 상황이 되곤 했다.


나는 모르는 입장이었다. 나보다 아는 것이 많은 그녀였다. 대부분 내가 배웠고, 대부분 화를 낼 상황에도 내가 몰랐다는 사실 때문에, 화 한 번 제대로 못 내고 설명해줬던 친절한 여자였다.


그렇게 한동안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만큼은 그녀 말대로 했다. 그게 내키지 않는 상황이라도 내가 모르는 입장이니까. 이런 생각으로 그녀의 말에 따랐다.


어느 날, 껄렁대는 모습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자주 붙어 다녔던 친구 한 명과 그녀와 함께 노원역 노래방에 가게 됐다. 그녀와 친구는 금세 친해졌다. 우연찮게도 그 둘은 집도 같은 방향이었다. 다 놀고 집에 갈 때, 당고개행 지하철을 타려는 순간에 그녀는 나를 막았다. 오늘은 그 친구랑 함께 집을 가겠다며.


나는 항상 당고개역 버스 타는 곳까지 배웅했고, 때론 버스를 타고 청학리 집까지 가곤 했다. 고등학생 남자 친구가 할 수 있는 매너였고, 그 시간 또한 데이트의 일부였다. 그런데 그 날은 내 친구가 그 역할을 가져갔다.


어이가 없었고 화가 났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 버릇처럼 멈춰 섰다. 그리고 당고개행 지하철은 출발했다. 서서히 속도를 냈다. 창문으로 함께 이야기하며 가는 그녀와 친구의 얼굴을 지켜봤다.


며칠 뒤, 함께 갔던 내 친구는 그녀에게 고백 비슷한 언행을 했음을 알게 됐다. 그녀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됐다. 그런데 별로 놀랍지 않았다. 사실 그 고백보다 더 화가 났던 건 노원역에서 함께 타지 않았던 내 다리였다.


감정의 균열은 결국 헤어짐을 가져왔다. 헤어지는 날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녀와 친구를 탓하는 생각들을 실컷 한 뒤에 화살은 나를 향했다.


그녀에 대해서 알려고 했고 노력했던 시간들은 많았지만, 나에 대한 감정들과 사실들을 공유하는 시간은 부족했다.








아직까지도, 누군가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지 고민을 한다. 관계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나는 상대에게 맞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게 나의 단점이자, 소중한 이들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을 책임지고 있는 성격이다.


힘들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상대가 원하는 무엇을 준비하고 피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맞춘다. 그래야지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과 개인의 거리는 멀어진다. 그 거리를 좁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는 관계.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만약 나에게 그런 관계가 온다면 흔히 말하는 '운명'이라 칭하는 행운. 느껴보지 못했던 흥분의 절정을 경험하겠지만 바람일 뿐이고 그런 적은 없다.


달콤하면서 일리 있는 방법론들이 넘쳐난다. 또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고민, 생각하는 시간이 사라졌다. 누군가가 만들어 낸 정답을 그냥 실천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좋은 방안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하면 부모님이 생각난다. 그런데 자식의 존재 자체보다 자신이 원하는 자식으로 만들려는 부모들에겐, 있는 그대로의 자식으로 좋아해 주지 않는다. 부모님도 힘들 만큼 어렵다.


최소한의 노력-행동이 있어야 변화하고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는 멈춘 상태이고, 그 어떤 변화도 없다. 우리가 겪는 변화는 누군가의 노력과 행동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좋아해 주는 관계. 이건 누군가가 그렇게 해줘야만 가능한 관계다. 마냥 기다린다고 해서 그런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선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마음을 갖은 많은 이들이 존재해야 한다.


나도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나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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