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특별한 시점에 좋아하게 된 음악을 들을 땐 그 시대와, 그 시대에 느꼈던 나의 감정과, 그 시대에 만났던 사람이 떠오른다. 듣는다는 것은 특별한 시점을 기억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지표를 함께 가져온다.
목소리.
이것은 음악과는 다르게 그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주인공과의 모든 이야기를 담은 함축된 형태로 다가온다. 이것은 듣는 이와의 관계에 따라서 그 내용은 크게 다르다.
듣는 행위를 통해 얻는 정보들 중에서 목소리가 주는 정보는 방대하다. 사실 목소리는 정보를 '제공하다'가 아닌 '끄집어내다'의 해석이 어울릴 것 같다.
우연히 걸려온 전화기로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올 땐, 시간으로 잊었던 기억들과 꺼내려고 시도조차 안 했던 추억들이 강제로 흐르기 시작한다. 귀에 닿은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온 목소리는 우리의 내면으로 흐르고, 안에 숨겨두었던 감정의 덩어리를 적신다. 마른 찰흙처럼 굳어있던 덩어리를.
그 순간 감정적으로 변하고 재해석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셀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짧은 순간에서 반응하고 사라진다.
처음 듣는 목소리는 내 안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찰흙 같은 덩어리로 자리 잡는다. 그렇게 우리는 매 순간 감정의 덩어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덩어리는 대상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오는 과정을 통해 형태를 갖춘다.
이 형태는 매번 변한다. 목소리의 높낮이에 따라서도 바뀐다. 표정과 몸짓과 분위기의 조화에 따라서도 바뀐다. 그렇게 수 없이 바뀌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안에는 한 사람의 덩어리가 완성된다.
주기적으로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덩어리의 물기가 남아 형태의 변화를 언제든지 시도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미지와 본질이란 언제든지 변할 수 있기에 우리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또는 원하는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 이 덩어리의 물기를 최대한 유지시키려 한다. 내면의 물기를 소모해서 그렇게도 노력을 한다.
지금의 시대는 문자의 소통을 더 원한다. 내면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시대. 나를 아끼는 시대. 불필요한 정보와 감정을 차단하는 시대. 이런 시대에 누군가와 꼭 목소리로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어색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문자로 소통하는 시대. 이 시대에서의 목소리는 그저 그 주인공을 식별하고 기억하는 음악과 같은 지표의 용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