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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연필 May 12. 2019

피곤하려는 사람들

피곤하려고 노력하는 나와 그들에게

나에게는 두 친구가 있다.


질문

시간


내가 죽을 때까지 옆에서 있어줄 두 명. 이제는 서로 친해졌는지 한 명씩 다가오질 않는다. 대부분 붙어서 다가온다. 질문이 필요할 때 뒤에 시간이 있고, 시간이 필요할 때 뒤에 질문이 있다. 내가 지쳐있을 때면 두 손을 꼭 잡고 다가와 내가 자기들을 볼 때까지 지긋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마치 미드 덱스터의 아버지 같은 환상이지만 실존하는 친구처럼, 내 어둠의 동반자를 바라보게 하고 실수하지 않도록 신중함을 건네주곤 한다.

어떻게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서 답이 

어떤 타이밍이냐에 따라서 생각이 

다가가는 속도에 따른 긴장감이 

많은 것을 달라지게 만드는 이 마법 같은 친구들은 일상을 채워준다. 이를 실행하는 나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노력과 그것으로 건네받은 결과를 소화하기에 바쁘다. 그 과정에서 몰입감은 깊어지고 결과로 남은 것들은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게 나는 피곤하려는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다. 무엇이든 결정하기 전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시간의 가치를 생각한다. 그로 인해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만든다.


본디 피곤한 사람이라면 매사에 생각이 많고, 결단이 느리고, 스스로를 괴롭힌다고 알고 있다. 맞다. 결과만을 본다면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피곤한 사람이 좋다. 무엇을 지긋이 생각하고, 단 하나의 행동을 하더라도 신중하면서, 자기 안에서의 질문들로 탐구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사실 나는 노력하고 있을 뿐, 피곤한 사람으로 불리기엔 부족하다. 물론 내 기준이지만 확실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피곤하려는 사람으로 가는 중인 나에게 피곤함을 간혹 느끼는 것을 보면.


이런 과정에서 압축된 생각들의 흐름이 익숙해질 때면, 익숙해져서 짧은 순간 그 모든 것이 풀어질 때면, 하나하나 소화해가면서 생각한다.『이런 나의 방식에 언젠가 지치지 않을까』


이런 의심 때문에 나는 아직 부족하다. 압축과 풀어짐의 구조를 조금 더 다듬어 의심할 필요가 없는 흐름으로 만들었을 때, 나는 내가 원하는 '피곤한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다.


편함과 귀찮음이 지배하는 세상. 피곤하려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가 될까. 보통 이런 사람들이 피곤한 시간을 보낸 뒤에는 세상에 '어떤 것들'을 제공했다. 그 어떤 것들은 많은 이들을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이후에는 결국 '어떤 결과'를 제공했다.


이런 결과들로 문명과 가치들이 탄생했음에도 다들 피곤하기를 꺼려한다. 그럴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무모한 / 현실성이 없는 / 허울 좋은 / 이상적인 접두어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강요도 제안도 할 수 없다. 그냥 원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이 글은 성격의 한 부분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일 수 있다. 동시에 이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적은 의미 있는 사실일 수 있다. 글의 의도가 있다면 나름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응원 비슷한 주절거림이 아닐까.


피곤한 사람으로 불린 적이 있다면?

본인의 잠재력을 칭찬받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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