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의 징후

by B급 인생

아내의 알람은 매일 내 알람보다 한 시간 전에 울린다. 내 알람이 울렸는데도 아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덜컹 걱정이 됐다. 지난 토요일 아침, 갑자기 응급실에 같이 가달라고 해서 황급히 다녀왔던 터이다. 요즘 손발이 저리다는 말을 자주 하더니 그날 아침 설거지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릇을 떨어뜨렸다고 했다. 마비증세가 왔던 모양이다. 50대 후반이니 혹시 그 나이에 흔히 오는 동맥경화 증세가 아닐까 불안했다. 응급실에서 오전이 다 가도록 기본적인 검사 몇 가지를 하더니, 다행히 특별하게 이상한 징후는 없다고 했다.


그날 아침도 나는 일찌감치 출근해서 글쓰기 강좌에서 내준 오늘의 미션을 수행할 참이었다. 나는 늘 직원들보다 1시간 전에 사무실에 도착한다. 그 시간에는 조용히 혼자 있기에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고부터 강좌 미션을 준비하기로 했다. 매일 하는 미션은 화두로 주어진 주제에 대해 메모하기다. 메모라고는 하지만 선생님과 동료 수강생들이 읽을 터이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노릇. 어제저녁부터 뭘 쓰면 좋을까 생각하다 이거다 싶은 글감 하나를 골라 놓았다. 그 생각이 달아나기 전에 얼른 가서 써야지 하고 있던 참이었다.

샤워를 하고 머리까지 말리고 나왔는데도 아내는 여전히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언제나 나보다 일찍 일어나 내 아침상을 봐준 아내여서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뭔가 사달이 난 것 아닐까 하는 걱정에, ‘아침은 내가 차려 먹을까’하고 확인 차 물었다. 그제야 아내는 주섬주섬 주방으로 갔다.

고마운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일단 출근했다가 여차하면 휴가를 내고 올 생각이었다. 출근복장으로 갈아입으며 가방을 챙기고, 마스크도 챙기고, 지갑도 뒷주머니에 넣고 거실로 나갔다. 그 와중에 글쓰기 미션으로 써먹을 글감을 거듭 되새기며 소파에 앉아 양말을 신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친 아내가 의아한 눈빛으로 거실로 왔다. 한참 나를 쳐다보더니.

“오늘 일찍 어디 가?”

“출근하려고...”

“오늘 노는 날인데?”

“왜 놀아?”

“그냥 노는 날이야”

아뿔싸! 그 날이 대체 휴일이 아닌가? 지난 금요일 직원들이 월요일은 대체 휴일이니 착각하지 말라고 그토록 강조했는데... 맞벌이 아내는 늦잠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기대치 않은 하루를 벌었다. 그런데 마음이 씁쓸하다.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나이를 제법 먹었다는 증거다.


몇 해 전부터 몸도 조금씩 낡아가는 느낌이 든다. 근력운동을 할 때 늘 들던 바벨과 덤벨의 무게와 반복 횟수를 감당하지 못해 점차 줄이기 시작한 게 이삼 년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벌써 오십 중반을 훌쩍 넘어 환갑이 몇 해 남지 않았다. 끔찍하다. 아직 아랫배보다 가슴팍이 더 나오긴 했지만, 격렬하게 운동할 나이는 아니다. 나름대로 꾸준히 관리를 했으니 이 정도라도 되었다.


이럴 때마다 젖어드는 상념이 있다. 젊은 날의 열정과 욕망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쇠잔해져 가는 내 몸을 보노라면 조금은 욕심을 부려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몸이 허락하는 대로 뭔가를 저질러 봤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너무 생기 없는 삶을 산 게 아니었을까. 몸도 마음도 점점 늙어가니 별 생각들이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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