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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Sep 17. 2020

나를 흔들었던 硏修

옐로우스톤의 밤하늘을 본 후

  미국 S도시에서 반년 가량 체류한 적 있다. 회사에서 1년간 보내주는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그때 나는 과중한 업무, 승진 실패, 상사와의 불화로 조직에 넌더리가 나던 시기였다. 어떻게 해서든 회사와 동떨어져 지내고 싶었다. 그러니 나로선 현실도피성 연수였다.


  연수는 부담을 느낄 정도로 빡빡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그 도시에 소재한 주립대학에서 그 학기에 서너 과목만 그럭저럭 수강하면 그만이었다. 동료 연수생들은 여행을 다니느라 수업을 종종 빼먹었다. 물론 문화체험이라는 명분으로 담당 교수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고지식하게 수업에 꼬박꼬박 출석했다. 기껏해야 주말에 혼자서 주변 도시에 다녀오는 게 고작이었다. 뭘 해도 흥이 나지 않았다.


  인디언 서머 같던 가을이었다. 후배 직원들이 보기에 답답했던지 옐로우스톤에 다녀오자고 부추겼다. 그곳은 겨울이 일찍 찾아오니 더 늦기 전에 가야 한다며 채근했다. 주저했지만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따라나섰다. 우리 일행은 이곳저곳에 산재한 간헐천을 구경하려고 부지런히 쏘다녔다. 내친김에 인근의 그랜드티턴까지 갔다 왔을 땐 예정보다 많이 지체되었다. 차 머리를 숙소로 돌릴 무렵에는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한데, 공원관리인들이 우리가 지나갈 길목을 차단하고 있었다.

 

  옐로우스톤은 자연 발화한 산불이 잦다. 대형재난의 우려가 있는 경우 외에는 인위적인 진화를 가급적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생태 차원으로나 방재 차원으로나 숲 관리에 유리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어디선가 피어오르는 희고 긴 연기를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날따라 낮엔 멀리서 보이던 연기가 공교롭게 우리가 나갈 방향과 가까워져 있었다. 숙소가 코앞이었지만 반대 방향으로 가서 반원 그리듯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거리를 두고 네댓 시간을 돌아가야 했다. 걱정되었다.


  숲이라서 밤이 금방 찾아왔다. 차 안에선 음악소리만 나지막이 들렸다. 나는 노곤해서 졸고 있었다. 그 어느 순간, 차가 느닷없이 급제동했다. 다들 몸이 앞으로 쏠렸다. 전조등에 비친 상황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한 무리의 야생동물이 우리 앞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우람한 야생 들소, 바이슨 떼였다. 혹시 우릴 덮치지는 않을까, 전조등을 황급히 껐다. 도로엔 우리 차밖에 없었다. 우두두 하는 바이슨 떼의 발굽 소리만 들렸다. 땅의 울림에 차체가 흔들렸다. 긴장의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다. 어둠 속의 고요가 찾아왔을 때에야 우린 비로소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 괜히 따라나섰다’ 싶었다.


  우린 가슴 졸이며 슬금슬금 기어가듯 나아갔다. 로드 킬보다는 정체모를 동물이 별안간 우리를 덮칠까 봐 더 걱정되었다. 어느덧 숲길을 벗어나 멀리 인가의 불빛이 보이자 겨우 한숨을 돌렸다. 누군가 용변을 해결하자고 했다. 불안에 휩싸여 생리적 충동마저 잊고 있던 터였다. 모두 허겁지겁 길섶으로 몰려갔다. 나는 긴장한 채 앉아 있느라 굳어버린 몸을 풀어보려고 두 팔과 목을 뒤로 한껏 젖혔다. 순간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중얼거리듯 딱 한 마디 한 게 다였다.


  "저것 좀 봐라"


  또 바이슨 때가 나타난 줄 알고 다들 움찔했다. 그러다 동시에 '우와'하는 저음의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별들이 그토록 빼곡히 박혀있는 밤하늘은 처음 보았다. 찬란한 별빛으로 밤하늘의 어둠이 다 가려진 듯했다. 오묘한 빛깔의 은하수가 구름처럼 가운데로 흐르고, 그것을 가로질러 소금가루를 마구 뿌려 놓은 듯 온통 별들이 반짝거렸다. 하늘 끝자락에선 소금이 아예 가루 째 쏟아지고 있었다. 이따금 별똥별의 빛줄기가 어둠 속으로 휙휙 빨려 들었다.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숭고했다. 나는 우주공간을 유영하듯 정신이 아득했다. 세상사를 다 잊었다. 나 자신마저도 잊었다.


  “선배님, 뭘 좀 먹고 갈까요?”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들 더 이상 밤길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앞에 비친 전조등 불빛만 쫒아갔던 우리에게 그제야 온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별빛이 있어 세상이 그리 어둡진 않았다. 잊었던 시장기도 몰려왔다. 길가의 허름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 차림의 사내 몇몇이 앉아 있었고, 스피커에선 컨트리 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미국산 로드무비 속으로 들어간 듯했다. 우린 수제 맥주를 곁들여 대야보다 더 큰 피자를 개미떼처럼 뜯어먹었다. 꿀맛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던 차 안에서 후배들은 지나온 여정을 화제로 수군거리고 있었다. 나는 뒷좌석에 조용히 웅크리고 생각에 잠겼다. 밤하늘의 별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고개만 들었더라면 언제든 볼 수 있던 장관이었다. 지상의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욱 찬란했을 것이다. 먼 길로 돌아가는 짜증스러움, 어둠이 주는 불안감, 야생동물에 대한 두려움, 숙소에 빨리 가고 싶은 조급함, 이런 것들이 우리의 눈을 가리진 않았을까?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낯선 곳의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생각은 내게로 이어졌다. 나는 일과 승진에 너무 집착했었다. 앞만 보고 달려왔다. 눈앞의 목표에만 매달려 있었다. 이런저런 허욕들이 내 눈을 가리진 않았을까? 뭔가 놓치고 지나오지는 않았을까? 좀 느리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좀 돌아가면 어떨까? 좀 뒤처지면 어때.


  “차 세워, 내가 운전할게!”


  나도 모르게 불쑥 소리쳤다. 모두가 잠들면 나는 밤하늘을 감상하며 조금 느리게 갈 작정이었다.


  귀국 후,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복제 액자를 사서 거실 벽 한 귀퉁이에 걸었다. 시골을 지날 때마다 밤하늘에 별이 얼마나 떴는지 쳐다보는 버릇도 생겼다. 요즘도 마음이 어지럽고 혼탁해지면 별이 빛나던 옐로우스톤의 밤하늘을 떠올리곤 한다. 도피성 미국 체류가 내 삶의 터닝 포인트였다. 연수를 제대로 다녀온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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