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란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열은 없다’는 유명한 문화인류학자 말이 기억난다. 문화의 형성 배경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곡절이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고 나쁜지를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문화란 독자적으로 불쑥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웃한 민족이나 국가와 끝없는 교류와 토착화 과정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터이다.
반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보편적 인식에 따라 서로 교류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양태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페루 쿠스코에 가면 고대 잉카 건축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정교한 건축 솜씨에 누구나 감탄해마지 않는다. 그중 ‘12각의 돌’로 유명한 돌담을 두고 신비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돌들의 아귀가 맞도록 정교하게 다듬어서 쌓았기에 수백 년을 지나도 허물어지지 않는 견고함에 놀란다. 그러면 과연 이 돌 쌓기 기법이 잉카제국에만 나타나는 고유의 문화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쿠스코 12각의 돌(출처 : 픽사베이)
우리의 옛 건축물을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건축기술 중의 하나다. 성벽을 쌓을 때나 돌담을 쌓을 때, 누구나 자연적으로 생긴 모양에 맞추어 쌓는다. 그러다 한 발짝 더 나가면 아귀가 맞지 않는 돌이라도 인위적으로 다듬어서 쌓는다. 우선 가까운 한양도성으로 가서 보라. 쿠스코에서 볼 수 있는 돌 쌓기 기법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한양도성
이런 기법을 우리 전통건축에서는 ‘그렝이질’이라고 하는데, 모양이 다른 부재가 만나는 곳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서로 아귀가 안 맞으니 자리를 제대로 잡아 주지 않으면 틈이 생기고 흔들리기 때문이다. 특히 기둥을 세울 때 어김없이 사용하는 기법이다. 자연 상태의 돌이든 인공적으로 다듬은 돌이든 주춧돌의 윗면은 완벽하게 평평하지는 않다. 건축물의 하중을 고스란히 지탱해주는 기둥은 조금만 삐딱하게 세워도 안정성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울퉁불퉁한 주춧돌의 윗면에 맞추어 기둥 밑바닥을 깎아서 세울 수밖에 없다. 돌을 깎는 것보다 나무를 깎는 게 더 쉬우니 말이다.
왼쪽 : 죽서루 기둥, 오른쪽 : 해운정 기둥
이건 문명의 발달 정도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래야만 하는 생활 속의 이치다. 그러니 쿠스코의 12각의 돌을 보며 감탄해마지 않더라도 그건 열악한 연장으로 힘들게 일했을 고대인의 끈기와 노고를 칭송하는 쪽으로 하면 될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문화에 대해서도 이런 시각과 태도를 잃지 말아야겠다. 요즘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데, 전통건축에 관한 서적들을 보면 억지춘양식의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며 우리 건축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 주장이 맞네 틀리네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문화에 자부심을 잃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우리 것이 최고’라는 식의 ‘문화 국수주의’에 빠지는 옹졸한 자세를 경계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 우리 건축이 왜, 어떤 사연으로 지금의 모습을 보이는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 보는 성숙한 자세가 옳다. 역사적, 인문적 배경이나 교류와 정착의 결과로써 우리 건축을 바라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