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 중년

by B급 인생

아침저녁으로 제법 한기가 느껴진다. 한낮에도 강렬하게 내리쬐던 햇살이 누그러들어 가을 기운이 감돈다. 그러고 보니 추석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곧 고향의 조상 묘소에 벌초하러 가느라 다들 분주할 것이다. 지방 출신들은 명절이면 고향에 간다는 마음 들뜬다. 고향은 삶이 출발하는 곳이며 그 사람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장소이다.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에 늘 그립고 정든 장소라 할 수 있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따뜻하게 반겨주리라 기대한다.


내 또래 세대는 진학, 취업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곳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갈망이 더욱 커지는 것은 타고난 동물적 귀소본능이 아닐까 싶다. 하긴 요즘 젊은 세대는 대부분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 살았으니 고향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정서가 내 또래와 같을 순 없다.


나도 사실은 태어난 곳에 대해 이런 애틋함이 크지 않다. 다른 이들처럼 사무치게 그리운 적이 별로 없다. 고향에만 이런 게 아니다. 나이가 들면 돌아가고 싶다거나 도시생활에 지칠 때면 떠올려 볼 수 있는 따뜻한 장소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자주 다녀서 그런 듯하다. 정들만하면 떠났으니 어쩌면 고향의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철들 무렵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대처로 떠돌았으니 더욱 그러하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릴 적 동네는 고향이 아니라 아버지의 임지였다.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느라 한 장소에 대한 깊은 추억이 없고 파편 같은 기억만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친구를 오래 혹은 깊이 사귈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가 제대를 하시고 귀향해서 농사를 짓던 몇 년간, 그러니까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살았다. 지나칠 정도로 내성적이어서 이사한 지 일 년이 다 지나도록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섞여 들기는 했지만, 죽마고우라 여길 만큼 죽고 못 산 친구는 없다. 고향이라서 가끔 궁금한 적은 있지만 사무칠 정도로 추억이 깊지는 않은 연유가 그 때문이지 싶다.



추석이 다가올 무렵이면 고향 다녀오자는 형님의 전화가 오곤 한다. 산소에 벌초하자는 게 이유이지만 형님으로선 그 밖의 사정도 많다. 고향에 대한 형님의 마음은 나와 사뭇 다르다. 집안의 장손이기도 하고 그곳에서 생긴 기억이 풍성해서 그러려니 추측한다. 환갑이 넘도록 교우하는 절친도 모두 고향의 죽마고우들이시고, 그곳에 살고 계신 집안 어른들도 장손에 대한 태도가 남다르다. 그러니 형님은 무슨 일이든 엮어서 고향 가는 일을 즐기신다. 집안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의무감이 크기도 하지만, 그곳에 새겨진 삶의 추억들이 형님을 은연중에 끌어당기기 때문이지 싶다.


반면에 나는 고향 가는 일이 그다지 즐겁지 않다. 오히려 귀찮을 때가 많다. 그곳에 가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뿐더러, 날 기억해주는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로 난 외지로 떠돌았고, 부모님도 생계를 위해 타지로 이사를 했으니 내 의지로 고향을 찾을 일도 드물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 함께 자랐던 동창생들과도 서로 무관심하였기에 오랫동안 연락 두절 상태로 지냈다. 각자 몇십 년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으니 이질적인 사고가 형성되었을게 자명하다. 아무리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어릴 적 친구라고 해도 이제와서 다시 친밀해지긴 어렵다. 겉으로 살가운 척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또한 사회적 인간관계의 표출일 뿐이다.




십여 년 전부터 누군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초등학교 동창생들에게서 가끔 전화가 온다. 졸업한 지 40년 이상 훌쩍 넘었고 그동안 한 번도 만난 적 없었으니 내겐 매번 생경한 전화일 수밖에 없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동기생들끼리 만나는 모임에 참석하라는 통지 전화다. 한 번쯤은 가볼 만한데도 마음이 썩 내키진 않는다. 보고 싶다거나 궁금할 만큼 애틋한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꾸역꾸역 되짚어 봐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얼굴도 없다. 그 모임에 가봤자 꿔다논 보리자루 마냥 구석에 웅크리고 있을게 뻔하다. 누군가 살갑게 말을 붙인다고 해도 나로선 어색하고 민망한 시간일 것 같다. 연락이 올 때마다 모임에 빠지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늘어놓 까닭이 여기에 있다.


중년이 되면 어느 정도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고 여유를 부릴만한 형편이 되었을 터이니 옛 동무생각도 날 만한 나이다. 더구나 서로 간에 밀어주고 당겨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절실할 때다. 동창생 모임이란 게 돈 안 들고 아쉬운 소리 안 해도 인적 자산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임에 나가려면 조건이 있다. 지금 내 삶이 과히 부끄럽지 않아야 할뿐더러 자랑하고픈 뭔가가 있어야 흔쾌히 나가고 싶지 않을까? 철 모르던 어릴 적 친구사이엔 사회적 명성이나 경제적 여유 따위가 만남의 걸림돌이 될 수 없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만 않다. 학창 시절에 나보다 학업성적이 뒤진 친구라던가 뭔가 내세울 만한 형편이 아니던 친구가 지금 나보다 잘 나가고 있다면 왠지 섞이고 싶지 않다. 좀 꿀리기도 하고 그 친구가 하는 짓이 왠지 잘난 체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서다. 그게 속물근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사가 다 그런 것 아니겠나?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드러내고 싶지 않을 만큼 형편없는 처지는 아니다.


사실 나는 모임 자체에 별로 흥미가 없는 성격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얼굴도 가물가물한 어릴 적 동무를 새삼 보고 싶지도 않다. 너무 인정머리가 없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은 없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정들면 그곳이 고향이라는 말도 최소한 내겐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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