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이방인>에서 길어 올린 <도덕경>의 가르침
체코의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남자가 돈벌이를 위해 고향을 떠났다가 25년 후에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때 남자의 어머니는 누이와 함께 고향마을에서 여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남자는 어머니와 누이를 놀라게 할 요량으로 부인과 아들은 다른 곳에 두고 혼자 어머니의 여관으로 갔다. 25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으니 어머니와 누이는 남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남자는 방을 하나 잡고는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은 채 돈이 가득 든 가방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나중에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되면 어머니의 기쁨이 더 커지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와 누이는 돈에 눈이 멀어 밤중에 곯아떨어진 남자를 망치로 때려 살해하고 시신은 강물에 버렸다. 아침에 부인과 아들이 여관으로 찾아갔다. 남편이 살해당한 줄도 몰랐던 부인은 자신과 남자의 신분을 밝혔다. 경악한 어머니는 목을 맸고 누이는 우물에 투신했다.
이 이야기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일화다. 살인혐의로 투옥된 주인공 뫼르소가 감방의 침대에 들러붙은 오래된 신문지 조각에서 읽은 기사의 줄거리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카뮈의 문제의식을 짚어내기 위해 몰입하다 보니 스치듯 지나치는 대목이라 기억을 못 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이방인>하면 이 일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한다는 알쏭달쏭한 주제의식보다는 현실에서 이런 황망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삶의 개연성에 더 심쿵해진다.
카뮈가 이런 일화를 왜 삽입했을까? 처음 읽었을 때부터 뜬금없다고 느꼈지만, 사소한 우연이라도 이런 큰 비극을 낳을 수도 있겠다는 정도로 받아들였다. 이런 게 삶의 부조리라 일컫는 것일까? 어쨌거나 우리의 삶은 이처럼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이 계획하거나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인생을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이 일화에서 삶 앞에서 경계심을 가지고 겸허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 정도만 길어 올렸다. 카뮈의 대단한 문제의식에 비한다면 나의 깨달음이 가소로울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다 이 일화와 어울림직한 <도덕경>의 문구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세상사는 선과 악, 행복과 불행, 길고 짧음, 높고 낮음 같은 서로 반대되는 양태들이 새끼줄의 두 가닥 볏짚처럼 서로 꼬여 있는 상태라는 게 <도덕경>의 통찰이다. 마치 유전자 줄기 모습처럼, 상반된 것들이 서로 얽혀 서로를 유지시키고 있는 형국이 세상사라는 말이다. 어찌 보면 동전의 양면이란 표현도 어울릴 듯하다. 이런 세상만사의 구성 원리나 법칙을 노자는 '도(道)라고 불렀다. <이방인>의 일화 속 남자는 자랑하고픈 자신의 성취로 인해 오히려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된다. 삶에 대한 경솔함이 문제였다. 남자의 진지하지 못한 언행이 방아쇠가 되어 삶의 행불행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도덕경>의 시각대로 보면 이 남자 인생 동전의 면이 뒤집혔다. 현실 속 우리의 인생인들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도덕경>의 ‘총욕약경(寵辱若驚)’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총애를 받는 일과 모욕을 당하는 일을 똑같이 놀라움을 가지고 대하라고 한다. 특히 총애를 받았을 때 경계심을 잃지 말라고 강조함을 읽어낼 수 있다. ‘공수신퇴(功遂身退)’라는 말도 있다.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물러나라는 뜻이다. 내가 이룬 모든 훌륭한 업(業)이 나만의 공(功)으로 성취되지 않았으니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라는 뜻이다. 급기야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처럼 살라고 한다. 그저 땅의 생김새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어 가며 낮은 곳으로 흘러가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 넓고 깊은 바다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친다.
회사에서 연말 승진인사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후배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누구는 승진했다는 들뜬 기쁨에 내게까지 전화를 했다. 나로선 대견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다 이번 승진인사에서 아끼는 어느 후배가 누락되었다기에 내가 먼저 위로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총욕약경'이니 '공수신퇴'니 하는 말을 들먹일 분위기는 아니었다.
누구나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미친 듯이 환호하고 싶을 만큼 기분 좋은 일도 있었을 수도 있고, 목놓아 울고 싶을 만큼 서러움이 목까지 차오른 일도 있었을 터이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보낸 후에 맞이하는 기쁨이라면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반대로 아직도 시련의 시간을 좀 더 견뎌내야 한다면 가슴 먹먹하거나 서운함에 힘들어 할 수도 있겠다. 허나, 성취감과 좌절감,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이 모든 대립면들이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라는 게 <도덕경>의 통찰이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느 면을 만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올해 좋은 결과로 바라던 바를 이룬 사람은 액운이 끼지 않기를 앞으로 경계할 일이며, 좌절감과 절망에 힘들어하는 사람은 아직은 인고의 시간이라 여기며 흩어진 마음을 다잡아 보아야 하겠다.
이쯤에서 미국 대통령 당선자 바이든이 위기 때마다 했다는 말을 나도 한번 읊조려본다. 호감이 별로 가지 않는 사람의 말이지만, 삶의 또 한 마디가 지나가는 세모에 제법 어울림직한 말이다.
"한 인간의 묘비에 적힐 평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