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편제>의 테마곡 <천년학>은 대금연주곡이다. 대금 특유의 투박한 듯 청아한 소리가 흐를 때면 이 영화의 애절함이 더욱 절절해진다. 나도 대금을 배워 <천년학>을 직접 연주해보고 싶었지만 대금 강좌가 흔치 않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 2년 전쯤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대금 강좌를 발견했다. 나는 아내에게 1년 후엔 <천년학>을 멋들어지게 불어주리라 큰소리를 뻥뻥 쳤다.
첫날 강의실에는 내 또래 선생님을 가운데로 하여, 노신사 한 분과 중년 아주머니 한 분, 젊은 주부 한 분이 좌우에 앉아 계셨다. 모두 손에는 격조 있어 보이는 대나무 대금이 한 자루씩 들려 있었다. 선생님이 대금은 준비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저렴한(3만 원짜리) 플라스틱 막대기’를 꺼내기가 주저되었다.
“<천년학> 배우러 오셨나요?”
어찌 아셨을까 나는 당황했다. 선생님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으셨다. 그러더니 입술 모양과 위치, 김 불어넣는 요령을 가르쳐 주셨다. 그까짓 것 일도 아니지 했지만 나는 헛바람만 픽픽 내느라 얼굴을 붉혔다. 강습시간이 다 지나도록 소리를 내지 못한 채 뛰어나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달포가 지나도록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아내에게 큰소리는 쳤지만 짜증스럽고 애만 탔다. 연습을 하다가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침대에 대금을 내동댕이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집에선 분명히 소리가 났는데도 선생님 앞에만 가면 헛바람만 내다 돌아오곤 했다. 예의상 그 학기만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 달가량을 꾸역꾸역 더 다니다 보니 그럭저럭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선생님은 대금 잡는 자세를 가르쳐 주셨다. 고개를 45도 가까이 왼편으로 돌리면서, 두 팔은 반대로 뻗은 채 구멍을 막으니 왼쪽 손목이 뒤로 심하게 젖혀졌다. 겉으론 단아해 보이지만 몹시 불편한 포즈였다. 대금 길이가 70센티미터가 넘어서 입을 취구에 맞추려고 하면 손가락이 엉뚱한 자리에 가있고, 손가락에 신경 쓰다 보면 어느새 입이 생뚱맞은 곳에 가있곤 했다. 그 후로 목이 뻐근하고 손목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참다못해 통증의학과에 찾아갔다. 손목 건초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힘줄에 심한 염증이 생겼으니 손목을 무리하게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회의가 들었다.
그냥저냥 다니다 보니 두어 달이 지났다. 그사이에 자세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음계와 운지법을 숙달시키기 위해 선생님이 <아리랑> 연주를 반복해서 시켰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또 두어 달이 지나갔다. 선생님 앞에서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아리랑>을 불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한 고비 넘기셨습니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습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인지 어리둥절했다. <아리랑>만 배우고 그만둘 참이었는데 말이다. 선생님은 그 날부터 <다스름>을 가르쳐 주셨다. 그 곡은 본 연주에 앞서 음을 조율하기 위한 연습곡이다. 대금 연주자마다 자기만의 <다스름>이 있는 듯했다.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고 매력 있는 곡이다. 그 곡만 배워두면 어딜 가든 우쭐댈 수 있을 것 같았다. 손목 통증은 여전했지만 딱 한 학기만 더 다녀보기로 했다.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날 무렵, 악보를 보지 않고도 떠듬떠듬 <다스름>을 불 수 있게 되었다. 대금의 맛을 조금 알 듯했다. 선생님이 연주할 때는 사람의 곡(哭)이 연상되기도 했다. 다행히 손목 통증은 잦아들었다.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었다. 선생님께 넌지시 여쭈었다.
“저도 제대로 된 대금 하나 장만해도 될까요?”
“제가 괜찮은 놈으로 하나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대개 사람들이 <천년학>에 꽂혀 대금 강좌를 찾아온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중 9할 이상이 한 달이 채 안 돼 그만둔다고도 하셨다. 소리가 나질 않아 제풀에 지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큰돈이 드는 대나무 대금을 처음부터 불쑥 권할 수 없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첫날에 선생님이 머금었던 미소의 의미를 알 듯했다.
새로 산 대금으로 기본기를 몇 달째 연습 중이었다. 그중엔 <천년학>도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서편제>에서 들은 그 절절한 맛을 흉내조차 낼 수가 없었다. 음계도 조금 차이가 있는 듯했다. 나는 소리도 제대로 못 내는 주제에 건방을 떨며 선생님께 여쭈었다.
“선생님, 전 왜 맛이 안 날까요?”
“<천년학>은 원래 정악대금으로 연주해야 합니다.”
그동안 익힌 대금은 산조대금이었다. 정악대금은 10여 센티미터 더 길어서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제대로 소리가 난다. 산조가 격정적이라면 정악은 그윽하다. 산조가 민초들의 한풀이라면 정악은 선비의 절제된 슬픔을 표현한다. 굳이 비교한다면 산조가 재즈이고 정악은 클래식이다. 이런저런 선생님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그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나는 이미 작정했다. 아내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모아둔 비상금을 흔쾌히 질렀다. 나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대금 두 자루를 보여주며 으스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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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매일 대금 두 자루를 붙들고 한 시간 이상 씨름을 했다. 하루라도 건너뛰면 제대로 소리를 내주질 않았다. 조금만 욕심을 내면 괴이한 소리가 나곤 했다. 빨리 숙달시켜 남들 앞에서 보란 듯이 연주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아내 앞에 조차 나설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조급한 마음에 결례를 무릅쓰고 선생님께 여쭈었다.
“선생님은 언제쯤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났습니까?”
“전 아직도 제소리가 맘에 안 듭니다.”
“그래도 이만하면 대금 좀 분다는 생각이 드셨던 때가 있었을 텐데요?”
“저는 10년쯤 지나고 나서야 겨우 소리가 나는 듯했습니다.”
배움은 자신과의 긴 싸움이라는 말씀으로 들렸다. ‘배움은 겸허의 다른 이름’이라는 가르침으로도 들렸다. 강습이 끝날 때까지 나는 선생님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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