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도

한 남자의 어떤 인생

by B급 인생

지방 소도시 외곽 농촌마을에서 나고 자란 남자의 평범치 않은 인생 이야기이다. 고등학교를 마친 남자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땅을 일구던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장남이었던 남자가 혼자서도 제법 농사일을 해낼 수 있었을 무렵, 먼 친척의 소개로 비슷한 형편의 어린 처녀를 만나 일찌감치 장가를 들었다. 아버지는 일구던 땅의 반쯤을 떼어 아들에 물려주고 생계를 꾸려가게 했다. 알콩달콩하던 신혼생활 1년 후엔 앙증맞은 딸을 얻어 딸바보가 되었다. 논밭일을 하다가도 몇 번씩 집으로 와서 딸아이를 보고 갈 정도였다. 농사일이 고되긴 했지만 딸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름을 풀며 살아갔다.


호사다마랄까? 그 이쁜 딸이 첫돌이 지나고 두 돌이 지나도록 마마, 빠빠 외엔 말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딸이 조금 느릴 뿐이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말이 한번 터지면 금방 수다쟁이가 되는 아이들을 주변에서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네 번째 생일이 다 되어 온 동네를 뛰어다닐 정도로 튼튼하게 자랐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이곳저곳 병원을 찾아다니며 검사한 끝에 딸은 언어 장애아로 태어났음을 알았다. 부부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해갔다. 하지만 딸이 학령에 가까워지자 근심이 깊어져 갔다. 취학 자체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 간다 하더라도 공부는 고사하고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사람을 기피하고 엄마와 붙어있기만 했던 딸이었다. 딸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 부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고도 남으리라.


고된 농사일과 지척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아내는 딸마저 정상적이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서서히 지쳐갔다. 결혼만 일찍 했지 아직 앞길이 창창한 어린 여자였다. 아내는 몇 해를 더 견디다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남자는 백방으로 수소문 한 끝에 아내를 찾았지만 이미 돌아선 아내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딸만 남겨두고 모질게 떠난 아내가 원망스러웠지만 심성이 고운 남자는 이번에도 운명이려니 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졸지에 싱글대디가 된 남자는 심봉사가 심청이를 키우듯 딸을 돌보며 살아갔다. 농사일까지 해가며 홀로 언어장애 딸아이를 키우던 남자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지 뻔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남자에게 세상이 뒤집힌 듯 복이 굴러들어 왔다. 결혼에 한번 실패했다지만, 누가 봐도 눈길이 갈만한 미색의 여인이 남자에게 나타난 것이다. 서로 비슷한 처지이다 보니 여자는 남자의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공감해주고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혼자서만 삶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던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자에게 빠져 들었다. 게다가 어린 딸아이까지 자신의 소생처럼 보살펴 주니 천사가 따로 없다고 여겼다. 주변에서 칭송이 자자했다. 어떤 이는 성치도 않은 어린 딸을 키우며 착하게 산 나무꾼 같은 남자에게 하늘에서 선녀를 보내준 게 틀림없다고도 하였다. 그렇게 저렇게 남녀가 서로 왕래를 하더니 언제부턴가 여자는 아예 남자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정식 혼례만 치르지 않았지 사실혼의 관계로 발전한 셈이었다. 날로 성숙해가는 딸을 언제까지나 집에 둘 순 없었기에 장애인 학교로 보낸 것도 이 무렵이었다. 둘만의 살림은 깨소금이 소쿠리째 쏟아지는 듯했다.


인생은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속도 알 수가 없다. 여느 날처럼 열심히 농사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그날따라 집안 분위기가 유난히도 썰렁하게 느껴졌다. 언제나 사근사근 자신을 맞아주던 여자가 어딜 갔는지 밤늦도록 보이지 않았다. 활달한 성격이라 더러 인근 대도시로 바람 쇠러 가는 일이 있었기에 그날도 그러려니 하고 불안감을 달래고만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 밝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옷가지며 물건들이 보이질 않았다. 혹시나 해서 처가에 전화를 했지만 뭔 뜬금없는 소리냐고 면박만 받았다. 혹시 첫 아내처럼 집을 나간 게 아닐까 불길한 생각이 스쳤지만, 그간의 행실을 보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닐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루 이틀을 더 기다리던 남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알고 지내던 인근 파출소 경찰에게 행방불명 신고를 했다.


이곳저곳을 수소문도 하고 다녔지만 여자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은행에서 채무관계에 대한 안내장이 오더니 날이 갈수록 여기저기에서 집안 물건을 차압한다는 통지문이 수없이 날아들었다. 영문을 알 수 없던 남자는 은행이며 사채업자며 찾아다니며 전모를 파악한 끝에 경악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자신도 모르게 집이며 땅이며 모든 재산 하나하나를 담보로 잡히고 대출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출 기한이 다가오자 아내는 모든 것을 싸들고 사라져 버렸다. 심성이 곱기만 했던 남자는 아내에 대한 분노보다는 자신의 황망한 인생만 하염없이 탓하였다.


남자는 그제야, 같이 살기로 작정하고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여자의 부모가 알아서 하라는 듯한 태도로 사윗감을 보는 둥 마는 둥했 장면이 떠올랐다. 두 노인네는 딸이 표적으로 찍었던 남자를 데려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어리숙한 놈 또 하나 걸려들었다는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남자가 안타깝기는 했지만 딸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는 궁핍한 부모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TV 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Y>나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일이 이 남자에게 벌어진 것이다.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남자는 연로하신 부모님 댁에 다시 들어가 살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남자에게는 다행히 사업수완이 좋아 석재 장사로 제법 돈을 번 동생이 있었다. 동생도 형을 닮아 심성이 고왔다. 형의 반평생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늘 안타까워하던 동생이 형에게 일을 나눠 주기도 하며 생계를 도왔다. 동생이 보기에 쉰 살이 넘도록 부지런히 농사만 지으며 착실하게 살던 형의 노후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노후엔 아낙네의 손길이 더 필요할 터이니 넌지시 재혼을 권하기도 했다. 남자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두 번이나 여자로부터 상처를 받았기에 재혼 얘기가 나올 때마다 손사래만 칠 뿐이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동생은 해외 여성을 상대하는 결혼 중개업소에 형과 상의도 없이 다짜고짜 형을 등록시켜 버렸다.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남자도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여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긴 했지만, 혼자 살아온 세월도 꽤 오래되어 몹시 외로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50줄에 들었지만 가끔은 남자로서 육체적 욕망이 여전했던 이유도 있었다. 어차피 혼자 살 팔자라면 이번 만남이 실패한다 해도 현재의 인생보다 나빠질 순 없을 거란 생각도 컸다.


중매받을 여자는 베트남 사람이었다. 중매업소로 찾아간 남자는 소개업자가 내놓은 여성 사진 중에서 나름 맘에 드는 인상의 여성을 선택하였다. 만나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꿔도 된다는 말에 까다롭게 굴 필요는 없다 싶었다. 그 이후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남자는 패키지여행을 떠나듯 여러 농촌 남자들과 베트남으로 맞선 여행을 떠났다. 호텔에 도착한 남자 일행은 도착하자 말자 그쪽 여성들과 단체 미팅하듯 만났다. 소개업자는 남자들을 각자 정해진 파트너와 함께 그날로 배정된 방에 투숙시켰다. 물론 남녀 파트너 간의 합의하에서였다. 한 인연의 만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듯해서 남자는 어리둥절했지만 워낙 경황이 없어 소개업자가 시키는 대로만 했다. 어쨌거나 사진으로만 보았던 20살이나 더 어린 여자를 실제로 만나니 마음이 꽤나 두근거렸다.


그날 밤 난생처음 만난 여자와 함께 다짜고짜 한방에서 밤을 보냈고, 이후로 사흘간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신혼여행처럼 보냈다. 그러고 나니 서로 말이 전혀 안 통하던 사이였는데도 남자는 여자에게 푹 빠져들었다. 늙수그레한 중년 남자가 딸 같이 어린 여자를 만나 밤낮을 같이 보냈으니,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상세한 설명이 없어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남자는 소개업자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여자와 같이 살겠노라 몇 번이고 확인시켰다. 혹시 실수로 사람이 바뀌지나 않을까 조바심도 났다. 소개업자는 험상 이런 결과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알 수 없는 미소만 보였다.


급기야 남자는 여자의 부모를 찾아가서 한국에 데리고 가서 같이 살겠다는 의사표현을 했다. 얼마나 맘에 들었는지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동생이 챙겨 준 돈을 아낌없이 쓰면서 여자의 부모에게 환심을 듬뿍 사두었다. 자의 입국과정에서 국제결혼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치느라 몇 달이 걸렸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베트남으로 몇 차례 다녀오기까지 했다. 남자는 가족들만의 간소한 결혼식을 무사히 올렸다. 남자의 동생이 이제 형이 남은 생을 아무 탈 없이 행복하게 살라고 아담하게 집도 지어 주었다. 비록 아버지 같은 남편이지만 그럴듯한 집도 있고 자신을 딸처럼 이뻐해 주었기에 여자도 무척 행복하였다. 남자는 아기처럼 한국말이 서툰 어린 아내의 애교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지난 세모에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친구로부터 들은 친구의 친구에 관한 얘기다. 전화를 할 때마다 주책없이 수다를 떠는 사이라서 그날도 이 얘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친구는 그 친구의 인생이 참 기구하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내일모레 환갑인 친구가 뭐가 그렇게 부러운지는 모르지만, 남자는 늙어가면서도 참 철딱서니 없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러다 새해벽두에 올해 계획은 어떻게 세웠는지 아내가 묻는 바람에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6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인생이란 게 계획을 잘 세운다고 잘 살아지지는 않더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인생사에 어떤 변수가 끼어들지 알 수 없기에 계획대로 살 수도 없을뿐더러 그 계획대로 살게 된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삶이 행복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니 계획 따위는 접어두고 그날그날 주어지는 상황에 맞추어 열심히 살아가는 게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인생은 작은 조각 같은 하루하루가 모여 이루어질진대, 거창한 계획을 세워 놓고 거기에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 필요가 있을까? 이 남자의 인생을 보면 앞일을 계획하며 산다는 게 부질없어 보인다. 계획을 하던 안 하던 앞일이 어떻게 될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인생을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잣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이 남자의 삶을 평가한다면 불행하다고 해야 할까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호사다마, 새옹지마처럼 행복과 불행은 롤러코스터처럼 언제 닥쳐오고 물러갈지 알 수가 없다. 이 남자의 인생 굴곡이 다른 사람보다 선명하게 드러났을 뿐 우리의 인생도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또 하나, 어리숙하긴 해도 착하게 열심히 살아온 이 남자의 삶에 가슴 아픈 일들이 자꾸 찾아온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조금 덜 착하고 게으르게 살아도 잘 사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아도 오히려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은 어째서 그런 걸까? 이 세상의 법칙이 원래 그런 것일까? 그럼에도 착하게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살면 살수록 어려운 질문이 자꾸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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