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과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급 인생 Jul 28. 2021

나도 내가 답답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 사이의 간극이 엄청나게 크다. 사람들은 대체로 나의 페르소나, 즉 내가 세상에 보여준 나의 이미지나 겉모습을 통해 나를 판단하고 정의다.


오랜만에 만나 저녁식사를 하던 중 선배가 지나치듯 한 마디 툭 던졌다.


"걱정이란 걸 하고 사?"


과하다 싶을 만큼 걱정을 달고 사는 소심한 인간형이라 자책하며 살아왔는데 의외였다. 남들은 날 그렇게 보지 않는 모양이다. 그동안 나의 어떤 면 각인되어 그런 말을 했을까. 좋게 봤다는 말인지 뭔가 충고하려고 꺼낸 말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장자> 같은 동양고전 속 선인이나 도인처럼 세상사를 초월해서 산다는 의미로는 들리지 않았다. 좋게 해석하면 어떤 일이 닥쳐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해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웃으면서 면전에서 대놓고 한 말이었으니 최소한 속을 뒤집기 위한 의도는 없었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찜찜한 기분은 뭐였을까. '세상 참 편하게 산다'거나, '세상 물정도 모르고 철없이 산다'는 부정적인 의미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었지 싶다.


오랫동안 교분을 유지해온 사이라 단순히 한 면만을 보고 나온 표현이 아닐 터였다. 아무 사심 없이 툭 튀어나오는 한 마디였지만, 평소에 봐온 나의 행태를 응축해서 표현한 견해가 틀림없었다. 대학을 몇 해 같이 다녔고 오랫동안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선배의 견해이니 신빙성이 꽤 높다고 봐야 한다. 한 가지 짚히는 점이 있다. 큰 탈없이 승승장구하고 퇴직한 선배의 눈에는 조직생활에 대한 내 태도가 지나치리만큼 느긋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나는 살아 남기 위해 갖추어야 할 다양한 생존 기술들이 부족하다.  사내 정치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평소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안면을 터두어야 하지만, 몇십 년을 다는데도 여전히 나를 모르는 직원들이 많다. 규모가 꽤 큰 회사라 그럴 수도 있겠으나, 많은 사람의 눈에 띌 만큼 윗자리로 올라가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혹 나를 안다 하더라도 업무상의 접촉이 아니면 사적으로 말 한번 제대로 섞어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비교적 개인 간의 인적 교류가 활발한 회사라는 점에서 보면 나는 좀 별난 직원이다. 선배의 처세를 기준으로 보면 나는 정말 뭣도 모르고 조직생활을 다.


큰 조직에선  사내 인맥이 넓은 사람이 유리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평소에 업무 협조를 받을 일이 많을 뿐 아니라 승진시기에 많은 이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수월하니 폭넓은 인간관계는 직장생활에서 필수이다. 이런 자질과는 거리가 먼 나는 선배의 눈에 답답하게 보였을게 뻔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승진시기 몇 해 전부터 사활을 걸고 이름과 공적을 알리려고 미리 뛰어다니는 게 상식인데,  나는 먼 나라 일인 양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다. 오히려 왜 그렇게 미리 설치고 다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다 못해 선배가 충고도 해주면서 평소에 여기저기 인사하러 다니라고 부추겨도 천하태평이었다. 심지어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알만한 사람은 다 알 테니, 괜히 섣부르게 나서기보다는 진중하게 믿고 기다려보겠다'라고 답답한 소리만 해대었다. 세상 참 쉽게 생각하며 산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선배가 갖고 있는 나에 대한 이미지는 이때 강하게 형성되지 않았을까 싶다. 선배뿐만 아니다. 그 무렵부터 주변의 상사나 후배들도 나는 참 속 편하게 산다는 말을 종종 했다.


나는 내 의지와는 달리 시절타고났는지 줄을 잘 섰는지 그럭저럭 중간관리자까지는 승진하였고, 이제 정년퇴직을 몇 년 남겨두지 않고 있다. 나이 많은 입사동기 몇몇은 이미 오래전에 퇴직하였다. 여러 동종업계 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일찌감치 옮겨간 동료들도 꽤 많다. 나와 같이 재직할 때 조직생활이 능수능란하여 승승장구한 사람들이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어찌 보면 생존 수완이 남달라 어디에서 일하더라도 오래 살아남을 사람들이다.


그도 저도 아니고 그저 정년 때까지 편히 살고 싶은 나 같은 사람들은  '임금피크제'에 의존하여 연명 중이다. 봉급이 좀 삭감되더라도 현업 직위에서 물러나서 후배 직원들을 지원하거나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뒷방신세다. 그래도 강제적인 정리해고는 면하 봉급이라도 몇 푼 나오니 정년 때까지 버틸 만하다. 조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현업 때처럼 크게 간섭받을 일도 없어 차분히 퇴직 준비를 하며 알차게 보낼 수도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상사는 도무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얼마 전부터 조직에 변고가 생겨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직원들이 편히 근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몇 달 후에는 제도가 바뀌어 정년까지 근무할 경우엔 처우가 상당히 불리해기 때문이다. 정년퇴직 후엔 재취업은 고사하고 오랫동안 쌓아온 경과 지식도 아무짝에 쓸모없게 될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상황인지 꼬치꼬치 거론할 수는 없지만, 퇴직을 몇 해 앞두고 있는 당사자들은 깊은 시름에 잠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차이지만 정년까지 계속 근무할 것인지 아니면 변경되는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퇴직할 것인지 기로에 서있다.


해서 요즘 다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재취업 자리를 알아보기도 하고 퇴직 전에 챙겨야 할 것들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다. 나도 조금씩 대비는 하고 있지만 남들처럼 소란스럽게 움직이진 않고 있다. 아직 아이들이 제 밥벌이를 못하고 부모님도 연로하시니 퇴직하더라도 여전히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몇십 년 직장생활에 남은 거라곤 보잘것없는 집 한 채와 애들 공부시킨 것 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


그러던 차에 근자에 우리의 소식을 들은 선배가 충고라도 할 겸 저녁이나 먹자고 만난 자리였다. 내가 또 팔자 좋은 소리만 했던 모양이다. 요즘의 상황을 가볍게 보고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대화에 임했지 싶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선배에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그게 나의 화법이니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으면서.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바와 다르게 소극적이고 소심한 인간이다. 게다가 사회성이 부족하여 누굴 맘 편히 상대하지도 못한다. 친분이 깊은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말도 섞지 않는다. 애들처럼 낯을 많이 가리고 남의 시선을 무척 의식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사회생활하면서 나아졌지만 근본은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다. 성향이 이러니 남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들이 내겐 하기 힘든 것이 많다. 불가능한 것도 있다.


심지어 가깝다고 여기는 주변 사람에게도 대놓고 뭘 부탁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마음은 꿀떡 같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겨도 혼자 속으로 끙끙거리기만 하지 밖으로 표현하거나 도움을 청하질 않는다. 오히려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한 행동을 한다거나 심지어는 잘 돼가고 있다는 듯이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그렇게 타고났다. 노력을 해도 나아지질 않는다. 속으로 애만 태운다. 마치 겉으론 우아하게 보이지만 물속에선 경망스럽게 발을 휘젓고 있는 백조 같다. 내가 직장생활이나 삶의 중요한 고비에서 더 나은 선택을 놓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난들 왜 승진에 목마르지 않았겠는가? 난들 왜 보란 듯이 앞서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겠는가? 요즘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난들 왜 지금 상황의 엄중함을 모르겠는가? 난들 왜 퇴직 후가 걱정되지 않겠는가? 난들 왜 여기저기 다니며 재취업을 부탁하고 싶지 않겠는가?


내속을 잘 아는 누군가는 날 자존심이 센 인간이라 하기도 했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그런 것 같다고다. 속은 곪아가도 겉으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아간다. 힘들고 아파도 별로 내색하지 않는다. 그게 내 천성이다. 누군가 낌새를 알아채고 심각하게 대화를 해도 엉뚱한 말로 그 상황을 피해 가곤 한다. 속내를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다. 상대를 끌어들여 나를 해부하고 싶지 않다. 때론 속에도 없는 말을 해버려 실없어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심각해도 남들에겐 태평스러워 보이려고 한다. 나도 그런 나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날 저녁식사 때도 그랬다. 나의 진로를 걱정해주고자 이것저것 물어보던 선배에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심하게 답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저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만 했던 것뿐이다. 그게 나다. 뭔가를 부탁하면 외면할 선배가 아닌데 그랬다. 뭔가를 도와주려고 의도적으로 날 보자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도 내가 참 딱하고 답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선을 다했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